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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Mar 10. 2021

가족이라는 이유

미나리, 2020

화제작이다. 한국인 이민자 이야기를 브래드 피트가 영화로 만들었다. 한예리와 윤여정이 출연하고,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브 연이 함께했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이색적인 조합이다. 어떤 새로움이 전해질지 기대하며 상영관에 들어섰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미나리는 채소를 다듬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떠올리게 만들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실 동아시아의 따뜻한 여러 지역에서 재배되는 작물이지만 유독 우리에게는 한국의 채소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고국과 이민자의 매개체로 충분히 예상되었다.


그렇다고 미나리가 한국 영화는 아니다. 스크린에서 마주한 제이컵(스티븐 연)의 가족은 모두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한국답지는 않았다. 한예리와 윤여정을 제외한 배우들의 우리말은 지극히 재미교포다웠다. 그 어투를 듣고서 제이컵을 이민 1세대로 여길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칸소의 새로운 집에 제이컵네가 도착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건너간 가족들의 고군분투 정착기를 그려낸다. 제이컵과 부인 모니카(한예리) 그리고 딸 노엘과 아들 데이비드로 이뤄진 4인 가족이다. 수년째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다 지친 제이컵이 어느 날 가족을 이끌고 아칸소의 교외로 이주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새로운 터전에서 겪는 어려움은 대체로 비슷하다. 경제적 자립과 정서적 공간이 중요하다. 가족을 위해 오랫동안 병아리 암수를 구별했던 제이컵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 마침 한국인 이주민이 늘어나는 터라 한국 채소를 재배하여 판매하는 계획을 실행한다.


하지만 모니카는 불안하다. 병원과는 한 시간이나 떨어진 시골로 이사 와서 심장병을 앓는 데이비드가 걱정된다. 괜히 농업용수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거래처와 관계도 끊기면서까지 밭농사를 고집하는 제이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힘든 이유는 이러한 고충을 말할 친구가 주위에 없다는 것이다.

제이컵의 가족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자기 일을 해내면서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제이컵의 필사적인 노력은 늘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싫은 일을 견디면서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리려는 모니카의 눈물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삶이다. 둘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알기에 다투는 제이컵과 모니카에게 공감하게 된다.


갈등이 계속 평행선을 달릴 때 순자(윤여정)가 찾아온다. 엄마를 만나면서 모니카는 평온을 찾아간다. 손자와 손녀는 갑자기 함께 살게 된 할머니를 불편하게 느낀다. 막내 데이비드는 쿠키를 만들지도 못하고 쓰디쓴 한약만 건네는 할머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제이컵, 모니카, 순자, 노엘, 엘런의 모습은 전형적인 남편, 아내, 장모, 손주의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가족과 다를 바 없다. 그만큼 영화의 이야기는 평범하고 익숙하며 지루하다. 자신이 타향살이 혹은 타국살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따스하게 다가올지는 모르겠다.

지하수를 얻기 위해 폴과 제이컵이 상의하고 있다.

이처럼 가족을 다루는 이야기에는 독특한 존재가 끼어든다. 제이컵의 농사일을 돕는 폴(윌 패튼)이다. 일을 쉴 때면 그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비포장도로를 걷는다. 자처하는 그러한 고행은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는 지고 살아야 한다는 감독의 본심일지 모르겠다.


영화의 이야기는 뻔하지만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건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피부색이 달라도 제이컵을 괴롭혔던 경제적 압박, 모니카가 힘들어했던 말동무의 부재, 조부모와 문화적으로 충돌하는 손주의 마음은 틀림없이 모든 이민자가 공감할 만한 요소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어떨 때는 정말 밉고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은 격려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떤 잘못이라도 자르지 못하는 것이 가족의 끈이다. 그들의 관계에는 어떤 환경이나 조건이 개입하지 못하며 정답도 없다. 함께라면 어디서나 살아남는 가족이라는 존재는 미나리와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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