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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Mar 12. 2021

경제지가 원전을 옹호하는 방식

팩트 선별로 진실이 달라진다

며칠 전 모 경제지 편집국장, 산업부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디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본사가 서울 도심에 있는 한국기자협회 소속 언론사다. 그곳에서 본의 아니게 신재생에너지에 관하여 가벼운 토론을 나누게 되었다. 그때의 내용에 추가로 취재한 사실을 덧붙여서 풀어본다.


대화는 텍사스에서 시작됐다. 지난 2월 기록적인 한파로 텍사스 주는 정전 사태를 겪었다. 주도(州都) 오스틴의 삼성 반도체 생산공장까지 가동을 멈추면서 국내에는 많은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정전 이유로 텍사스의 높은 신재생발전 비중을 꼽는 지적이 나왔다.


나는 여기에 과연 신재생발전이 정전의 원인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신재생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세계 각국이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기습적인 한파라고 하지만 과연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독일을 언급했다.

A solar farm in Bavaria, Germany (Flickr/ Windwärts Energie)

경제지 간부들은 코웃음을 쳤다. 독일이 어디서 전기를 수입하는지 아느냐면서 가소롭게 나를 쳐다봤다. 안다. 프랑스다. 그 프랑스가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는지 묻는다. 원전이라고 답했다. 결국 신재생발전의 선두 주자인 독일마저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수입하는 것이니 논리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비틀었다. 아무리 그래도 원전이 매우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는 주장을 펼쳤다. 스베틀라나 일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예로 들면서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도 인간의 실수로 무너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그 작가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원전의 위험성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사무실을 나와서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해보면 신재생발전을 하는 이유는 탄소배출로 발생하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다.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는 이유는 위험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후변화 때문에 원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논리는 교묘하게 조작되었다.

Deep Ellum sidewalk covered with snow in Dallas snow storm 2021(Author: Matthew T Rader)

대화 내용 중 몇몇 부분은 팩트체크가 필요했다.


첫째, 텍사스 정전의 원인은 신재생발전인가?

아니다. 한파로 모든 발전원이 정상적으로 전기를 생산하지 못했다. 발전량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는 LNG 발전의 공급 파이프가 얼어 붙었다. 풍력 발전의 터빈도 마찬가지다. 원전 4기 중 1기가 한파로 가동을 멈췄다. 정전은 모든 발전이 골고루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


2011년 2월 텍사스에는 비슷한 추위가 몰아쳤다. 그 이후 당국은 각 발전시설이 낮은 기온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단열조치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텍사스 당국과 전기업체는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21년 2월 한파 속 정전이 다시 발생했다.


몇 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이상기후 이벤트는 골칫거리다. 발전회사는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재해를 방지하기 위한 투자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다른 주는 서로 전력을 주고받는 그리드망을 갖췄다. A지역에 발전소가 멈추면 B지역의 전기를 받아서 쓰는 식이다. 아쉽게도 텍사스에는 이게 없었다.

The Gundremmingen Nuclear Power Plant in Germany(Author: Felix König)

둘째, 독일은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절반의 진실이다. 독일이 프랑스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양보다 프랑스에게 수출하는 양이 더 많다. 태양광 발전이 줄어든 밤이나 바람이 약해지는 늦봄부터 여름까지는 수입의 비중이 크다. 그러나 전체의 양을 따져 보면 프랑스의 독일 의존도가 높은 셈이다.


재생발전이 태양의 노출과 바람의 강도에 영향을 받는 것은 맞다. 그런 여건에서도 독일의 전력 수출은 2011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5년에는 인접국에 68테라와트를 수출했고 17테라와트를 수입했다. 그래서 질문은 독일은 어떻게 원전을 줄이면서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하는가로 바꿔야 한다.


사실 독일은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국가 중에서 에너지 소비량이 가장 많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로 전력소비를 지탱하는 이유는 그리드망이다. 인접국과 전기를 교환하는 송전망이 잘 되어 있어서 수요공급의 불안정성을 낮췄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60%로 높인다는 독일의 목표가 매우 가까워 보이는 이유다.


해상 원유 생산기지(Author: Kristina Kasputienė)

셋째, 프랑스에서 원전 비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1970년대 1차 석유파동으로 석유값이 네 배나 오르자 프랑스는 원전확대 계획을 수립한다. 이른바 메스메르 계획이다. 1974년 발전비중에서 원자력은 7.78%, 화석연료는 61.07%를 차지했지만 2016년 원자력 72.28%, 화석연료 8.64%로 뒤바뀐다.


에너지 자립과 안보 측면에서 원자력 발전은 꾸준히 강화됐다. 현재 18개 발전소에서 58기의 원자력 발전기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다. 원전 수명도 40년에서 50년으로 늘리는 등 마크롱 정부는 여전히 원자력을 국가전력생산의 기둥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원전 축소다. 속도의 조절은 있지만 프랑스 내에 원자력 발전을 줄이려는 정부의 방침은 일관적이다. 2035년까지 14기를 영구정지하고 원전의 전력생산 비중을 절반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2011년 10월 11일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문가 인력이 후쿠시마 제3 원자력 발전소를 조사하고 있다.(Copyright: IAEA)

경제지 간부와의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자. 텍사스 정전의 원인이 신재생에너지 발전인 것은 맞다. 그러나 다른 모든 발전 설비도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독일이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수출이 더 많다. 그들은 사실을 선택적으로 제시하면서 다른 사실을 교묘하게 숨겼다.


그래서 우리는 기사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한다. 뉴스를 생산한 언론사가 어떤 곳인지, 그곳이 어떤 방향으로 글을 써왔고, 누구와 이해를 가까이 하는지 고려해야 한다. 편향된 사실 만을 제시한 건 아닌지, 더 알아볼 것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신문사를 나오면서 다시 그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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