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한파의 가출
추위가 사라졌다. 두꺼운 롱패딩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한낮은 따뜻하다. 머플러를 두르고 얇은 옷을 여러 겹 입었다면 코트만으로 밤기운을 견딜만하다. 사람들은 온화한 겨울이 싫지 않은 눈치다. 엄동설한이 사라진 원인은 무엇일까. 지구온난화가 범인일까. 먼저 이번 겨울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아봤다.
기상학에서는 12월부터 2월까지, 24절기로는 입동부터 입춘까지, 천문학에서는 동지부터 춘분까지를 겨울로 본다. 여기서는 기상학의 기준을 따랐다. 2017년 12월 1일 ~ 2018년 1월 24일, 2018년 12월 1일 ~ 2019년 1월 24일 서울 기온을 비교했다.
따뜻함의 증거는 기상청 자료에서 드러났다. 최고기온이 눈에 띄게 높았다. 2018년 12월 1일 ~ 2019년 1월 24일 평균 최고기온은 4.1도다. 지난 기간의 평균 최고기온은 1.8도로 차이가 크다. 2017년 12월 1일 ~ 2018년 1월 24일 최고기온이 영하권인 경우는 21일이다. 이번은 절반 수준인 10일이다. 지난 기간의 최고기온은 10도를 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24일까지는 10도 이상을 여섯 차례나 기록했다. 그중 가장 높은 기온은 13.5도다.
한파도 줄었다. 2018년 12월 1일 ~ 2019년 1월 24일 최저기온이 영하 12도 이하인 경우는 두 차례로 지난 기간의 절반이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도 이하로 이틀 이상 지속할 것이 예상되면 한파주의보가 발령된다. 평균기온은 영하 2.2도와 영하 0.8도, 평균 최저기온은 영하 5.7도와 영하 4.9도로 이번이 더 따뜻하다. 최저기온이 영하권인 경우는 48일로 같았다.
눈을 보기 어려웠다. 2017년 12월 1일 ~ 2018년 1월 24일 열두 차례 눈이 내렸다. 이번은 12월 13일 1.7cm, 사흘 뒤인 16일 0.4cm만 기록했다.
온난화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폭염의 원인인 지구온난화가 겨울에는 한파를 일으킨다는 의미다. 기온이 오르면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 극지방과 중위도의 온도 차가 줄어들면서 대기 순환도 약해진다. 이때 북극 둘레에서 '커튼' 역할을 하는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느슨해져 요동치는 제트기류가 남북으로 움직이면서 찬 공기를 중위도까지 전한다. 북극 한파가 발생하는 과정이다.
올 겨울은 따뜻하다. 내려온 찬 공기가 동쪽으로 빠르게 이동해서다. 만약 캄차카반도 인근 기압능이 기류를 막는다면 우리 지역의 한기는 갇힌다. 지난겨울 그 영향으로 같은 날씨가 수일 지속되는 블로킹 현상이 발생했다. 5~6일 이상 강추위가 지속된 원인이다.
기압계를 살펴야 한다. 이번 겨울에는 캄차카반도에 기압능이 약한 경우가 많았다. 한반도의 찬 공기가 하루 반짝 머물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삼한사온 공식은 사라졌다. 기압계의 빠른 이동으로 추위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상층의 한기도 약해졌다. 찬 공기는 5500m에 머문다. 내려오면 지상 기온이 떨어진다. 지금은 상층의 공기가 예전만큼 낮지 않다.
남은 겨울은 어떨까. 기상청은 1개월(2월 4일 ~ 3월 3일) 예보문을 발표했다.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겠습니다. 초반에는 상층 한기의 영향을 받을 때가 있겠고, 기온의 변동성이 크겠으며,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일시적으로 크게 떨어질 때가 있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통보문은 남은 겨울도 크게 춥지 않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2월 초에는 반짝 추위가 예상된다. 참고로 날씨를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은 10일이다.
지구온난화는 여전히 악화일로다. 북극한파는 언제든지 한반도를 뒤덮을 수 있다. 이번에는 원활한 기류에 힘입어 찬 공기가 빨리 지나갔을 뿐이다. 동쪽에 기압능이 강해지면 지난겨울처럼 동장군이 다시 한반도를 공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