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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Dec 04. 2019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12월의 첫 월요일 수원에 다녀왔다. 며칠 전 급하게 일정이 잡혔다. 용무는 오전이면 끝나기에 오후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짧게라도 여행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가고 싶은 장소를 정리한 지도 즐겨찾기와 수원시청 누리집의 관광 면을 확인했다. 가볼 만한 곳은 두 곳뿐이더라.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선택했다.


여행은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북)에서 시작했다. 성문 뒤편에는 매표소와 관광안내소가 있다. 무료 공원처럼 보이지만 입장을 위해서는 표를 끊어야 한다. 관람료는 어른 1,000원 / 청소년 및 군인 700원 / 어린이 500원이다. 수원시민은 무료다.


티켓을 받고 나니 관광열차가 지나갔다. 강한 바람으로 날씨가 추운 탓에 열차를 타고 편하게 구경하고 싶었다. 도보와 열차 사이를 고민하면서 안내소 직원에게 어디에서 탈 수 있는지 물었다. '화성 어차'라고 부르는 기차는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연무대 매표소 탈 수 있었다. 요금은 성인 기준으로 4,000원이다.

동북포루

계획대로 걷기로 했다. 애초부터 성곽길을 거닐려고 편한 신발을 신었다. 안내소에서 팸플릿을 받고 동선을 짰다. 화성의 길이는 5.7km다. 왕이 행차 시 머무르는 화성행궁은 서쪽에 있다. 장안문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을 한 바퀴 돌고 나서 행궁에 들리기로 했다.


성곽길은 걷는 데 두 시간쯤 걸린다. 길은 무난하다. 포장길은 아니지만 일반 운동화라면 충분하다. 평지부터 오르고 내리는 고개까지 코스가 다양하다. 몸이 불편하신 분에게는 성곽 위보다 성벽 안과 밖에 잘 정비된 산책로를 추천한다.

서장대

수원화성에서 가장 멋있는 장소를 꼽자면 서쪽 군사 지휘소인 서장대(화성장대)와 동쪽 지휘소인 동장대(연무대)다. 정확히는 그곳에서 보이는 성안의 전망이 백미다.


서장대는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곳에서 180도로 보이는 수원의 모습은 동해처럼 시원했다. 이날은 하늘도 화창해서 평소에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있는 산까지 보였다. 계속 앉아 있고 싶은 그런 장소였다. 고층 빌딩이 없는 점도 전망이 좋은 이유 중 하나다. 지자체에서 제한을 두지 않았나 싶다.


동장대에서 보이는 성안은 따뜻하다. 서장대와 다르다. 금잔디로 뒤덮인 낮은 구릉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동장대의 동쪽에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이 있다. 동장대와 창룡문 사이의 공간이 다른 우리의 유적지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유럽의 구릉처럼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다.

서남암문에서 팔달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

성곽길을 걸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성의 구조를 공부할 수 있다. 화성은 조선 후기 당시 최고의 기술로 지어졌다. 워낙 견고하기에 지금 보아도 성벽에 허물어진 틈이 없다. 성문부터 성곽, 기타 시설이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다.


방어를 위한 구조물도 다양하다. 포를 쏘는 '포루',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하는 '각루', 성벽에 가까이 다가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곽 바깥으로 튀어나온 시설인 '치', 쇠뇌를 쏘는 공간인 '노대', 적이 알지 못하는 '암문'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서암문은 밖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감쪽같다.


남문인 팔달문에서는 성곽이 끊어진다. 인도로 내려와 지동시장과 수원천을 건너면 다시 둘레길을 만난다. 허기가 생기면 시장에서 간단히 요기하는 것도 좋다. 수원천은 수량이 적어 모습이 아쉬웠다. 팔달문부터 출발지인 장안문까지는 대부분이 평지라 천천히 걷기에 좋다.

북서포루

수원화성을 걸으면서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첫째, 누가 왜 지었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은 조선 22대 왕인 정조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다. 1794년 1월에 시작해 1796년 9월에 완공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 능을 현재 화성시로 이장하면서 그곳의 관청과 민가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다. 수원화성은 당시의 이주로 생겨난 신도시다.


둘째, 왜 이름에 화성이 들어가는가?

본래 수원읍은 지금의 수원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현 화성시 화산의 아래인 화산동이다. 왕릉이 들어서자 기존의 관청과 주민 등 수원읍은 팔달산 아래로 이동했다. 읍명은 화성(華城)이라고 정했다. 화성을 둘러싼 성벽이 수원화성이다.


성곽길을 모두 걷고 행궁으로 향했다. 화성행궁은 장안문에서 남쪽으로 약 1km 걸어가면 나온다. 행궁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매표해야 한다. 어른 1,500원 /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 어린이 700원이다.

화성행궁의 입구인 신풍루

화성행궁은 왕이 행차 시 머무르는 공간이다. 평상시에는 수원부 관아로 사용됐다. 그래서 작고 초라하다. 행궁이라고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지는 않다. 대장금, 이산, 왕의 남자,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의 촬영지라는 표시가 매력스럽지 않았다. 정조대왕 어진을 모시는 화령전이 있지만 그마저도 최근에 그린 작품이다.


수원화성과 행궁을 모두 둘러보는데 3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행궁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성곽길을 더 천천히 걷고, 더 앉아 있으면서 정취를 음미하면 좋겠다. 세찬 바람과 수평으로 날리던 붉은 낙엽, 구름 한 점 없던 푸른 하늘과 숲속의 새소리가 생생하다. 기회가 되면 서장대에는 다시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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