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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Mar 12. 2019

3월의 울산, 그 둘째 날

다음 날 아침이다. 여덟 시 삼십 분쯤 잠에서 깼다. 서둘러 씻었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베란다에서 화학단지를 내려봤다. 반짝이던 지난밤의 모습과는 달랐다. 흐린 안갯속에 회색 건물만이 가득했다. 굴뚝에서는 부지런히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장이 지워진 얼굴처럼 공장촌은 그저 삭막할 뿐이었다.


식사를 챙길 차례다. 미리 알아둔 24시간 국밥집으로 향했다. 육천 원짜리 황태콩나물국밥을 시켰다. 국물은 밍밍하고 밑반찬으로 나온 깍두기와 장아찌도 지나치게 삼삼했다. 심지어 새우젓도 싱거웠다. 황태 쪼가리를 씹을 때마다 자꾸 가시가 걸려 뱉어내야만 했다. 맛도 없고 성의도 없는 음식으로 형식상의 식사를 마무리했다.

박상진 의사는 대한광복회를 조직한 울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다.

첫 목적지는 '박상진 의사 생가'다. 사실 그가 누군지 몰랐다. 며칠 전 '역사저널 그날(208회)'을 보면서 박상진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울산에 와서 명소를 검색하던 중 그의 생가를 발견했다. 그러한 우연이 마치 자신의 집에 들르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통편을 알아봤다. 주소는 '박상진길 23'이다. 출발지인 울산 디자인거리에서 약 50분이 걸린다. 인근 정류장에서 432번을 탔다. 버스는 태화강역 앞을 지나 울산공항이 위치한 북쪽으로 향했다. 19개 정류장을 지나 송정동 정류소에서 내렸다. 그리고 10분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박상진 의사 생가가 있는 곳은 과거 '송정마을'이라고 불렸다. 지금은 송정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어 한창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은 동네에 들어오는 버스가 없다. 주말인 이날에도 공사의 분주함을 증명하는 망치 소리가 일요일 아침을 채우고 있었다.

부사령으로 임명돼 만주로 떠나는 김좌진 장군에게 박상진 의사가 읊은 시다.

박상진 의사는 '대한광복회'를 조직한 독립운동가다. 유년 시절 왕산 허위 문하에 입문했다. 허위는 전국 의병부대의 연합체로 만들어진 13도 창의군을 지휘하여 서울 진공전을 수행한 인물이다. 23세에는 법학전문학교인 양정의숙에 입학했다. 26세에는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졸업 후 27세에 판사로 등용되어 평양 지원으로 발령을 받았으나 식민지 관리가 되지 않겠다며 사임했다. 다음 해에는 중국을 여행하며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투쟁을 모색했다. 1912년 귀국하여 독립운동의 재정 지원과 연락소를 겸하는 곡물상회인 '상덕태상회'를 대구에 열었다.


상덕태상회를 거점으로 박상진 의사는 독립운동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에 참가했다. 이후 32세가 되던 1915년 풍기광복단과 제휴하여 대구에서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에 추대됐다. 부사령은 황해도 의병장인 이석대다. 그가 순국한 후에는 '김좌진' 장군이 맡아 만주에 상주하여 독립군을 양성했다.

박상진 의사 동상이 태극기를 세워 들고 있다.

생가 뒤편 역사 공원에는 박상진 의사의 동상과 그의 흔적을 기록한 담벼락이 세워졌다. 벽에는 전별시, 사형판결문, 절명시, 유시와 사형집행 보도, 순국지인 대구감옥과 경주시 내남면 묘소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중 1917년 만주 부사령으로 파견되는 백야 김좌진 장군을 위한 전별시가 인상적이다.


가을 깃든 압록강 넘어 그대를 보내나니 / 쾌히 내린 그대 단심이 우리들 서약 밝게 해 주네 / 칼집 속의 용천검이 홀연히 빛 발할지니 / 이른 시일 내 공 세워 개선가 불러보세


대한광복회는 군자금 조달하고, 만주에 군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거점을 확보하여,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데 목적을 둔 단체였다. 행동강령은 비밀, 폭동, 암살, 명령 등이다. 광복회의 포고문에는 그 결의가 담겼다.


박상진 의사 생가는 1825년 세워진 목조 6동 기와집이다. 기존 솟을대문은 1959년 태풍 사라의 영향으로 훼손되어 평대문으로 바뀌었다. 입구 왼편에는 벤치에 앉아 있는 박상진 의사 동상과 기념비가 자리 잡았다. 삼일절 다음 날인 이날, 비석 아래에 놓인 보라색 꽃다발이 홀로 선생님을 기리고 있었다.

박상진 의사 생가 앞 기념비에 보라색 꽃다발이 세워져 있다.

박상진 의사의 출생지는 생가를 마주 보고 좌측 대숲 앞의 공터다. 지금의 생가는 박 의사가 태어나서 지낸 큰아버지 댁이다. 태어난 장소에도 건물을 세우려는 모양인지 부지에 땅이 새로운 흙으로 고르게 다져져 있었다.


생가 입구에 들어섰다. 사랑채가 보인다. 박 의사가 묵은 곳이다. 가문의 지위를 상징하는 기단이 5단으로 유독 높았다. 툇마루에 앉으면 아래로는 사랑마당에 막 피어오른 벚꽃 한 그루, 멀리로는 무룡산과 중계소가 보였다. 유년기의 박 의사가 보았던 시선이 이것이었을까.


사랑채에 들어갔다. 김좌진 부사령 만주 파견 전별연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다. 액자 속의 방이 이곳 사랑채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문화 해설사에게 물었지만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김좌진 장군을 만주로 보내는 전별연의 상상도다.

안채로 이어지는 중문의 통로에는 일경에 체포되어 압송당하는 장면과 대한광복회 주요 간부들의 회의 모습을 그린 상상도가 전시됐다. 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박상진 의사는 주로 백마를 탔단다.


안마당에 들어섰다. 왼편에는 전시관으로 이용 중인 곳간채, 중앙에는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 오른편에는 날개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안채와 날개채 그리고 안마당의 모습에서 고즈넉함이 전해진다.

여느 독립운동가의 집안처럼 박 의사의 가문도 일제 강점기 이후 가세가 기울었다. 지금의 생가도 다른 주인에게서 울산시가 사들인 것이다. 그리고 복원을 거쳐 2007년 지금의 모습으로 개방했다. 현재 날개체에는 박상진 의사의 증손자가 기거한다.


전시관에는 박상진 의사의 출생부터 마지막까지의 기록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도 개괄적으로 적혀있다. 대한광복회의 결성과 활약에 관한 이야기도 자세히 소개했다. 경상도 지역 독립 운동사를 공부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태화루가 태화강을 내려본다.

두 번째 목적지는 태화루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송정동 정류장에서 225번 버스를 탔다. 18개 정류장을 지나 태화루 사거리에 도착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기에 햇살이 후덥지근할 정도로 따뜻했다.


태화루는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영남의 3대 누각으로 불린다. 643년 당나라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온 자장 대사가 태화사를 세울 때 함께 건립됐다. 이후 임진왜란 전후에 사라졌으나 2014년 4월 다시 복원됐다.


태화루에서 내려다보이는 태화강의 전경이 볼만하다. 강변은 한강처럼 시설이 잘 갖춰졌지만 한강만큼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연인부터 가족 그리고 반려견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전해졌다.

단청의 화려함과 벚꽃의 분홍빛이 조화로운 봄이다.

다리를 건너 건너편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태화루 전체 모습이 한눈에 담긴다. 높은 언덕에 지상 2층으로 세워진 누각이 멀리서 봐도 웅장했다. 다만 뒤편에 세워진 아파트와 빌딩 그리고 광고판이 태화루의 멋을 상쇄했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건물은 그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했다.


태화강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짧은 시간 탓에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했다. 영일만의 호미곶보다 일출이 1분 빠르다는 간절곶, 신석기시대 바위그림인 반구대 암각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여행은 짧았지만 배움은 많았다. 울산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됐다. 조선, 화학, 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공업이 받치는 지역, 그리고 대기업 현대가 만든 도시였다. 거리에는 컬러보다 흑백 색감이 많았다. 가장 선명한 느낌은 문화적 결핍이다. 삼한 시대부터 작은 현과 군에 지나지 않았던 역사적 배경을 그 이유로 꼽아 봤다.

까마귀 떼가 태화강변을 무리 지어 날아다닌다.

경제적 수준은 높아 보였다. 잘 사는 부자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넉넉한 중산층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썰렁한 다른 지방의 백화점과 달리 울산 지역의 백화점에는 손님이 많았다. 특정 브랜드 백화점이 한 도시의 두 곳에서 운영하는 점도 신선했다.


울산은 관광도시가 아니었다. 여행을 추천할 만한 지역도 아니다. 그러나 박상진 의사 생가는 알리고 싶다. '가을 깃든 압록강을 넘어 그대를 보내나니'로 시작하는 전별시를 보기 위해서라도 꼭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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