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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Mar 11. 2019

3월의 울산, 그 첫째 날

봄이 와 버렸다. 3월 2일 정오쯤 신복시외버스정류장에 발을 내디뎠다. 미세먼지가 없어 숨쉬기 편했다. 구름은 다소 많았지만 그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이 따스했다. 가끔은 눈이 부셨다. 발목을 스치는 바람은 의외로 차가웠다. 가만히 있으면 으슥하고 조금 걸으면 더웠던 그런 날씨였다.


인도를 거닐며 목적지로 향했다. 검은색 SUV가 정류장 후미에 멈춰 섰다. 뒷문이 열리고 짐 꾸러미를 든 할머니가 힘겹게 내렸다. 시내버스가 성난 엔진음을 내며 옆을 지나갔다. 이때다 싶다는 듯이 버스 기사가 차량을 향해 경적을 날렸다. 자비는 없었다.


울산은 그 자체가 공장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도로는 널찍했다. 시민의식이 높아서인지 거리에서 쓰레기를 보기 어려웠다. 쉴 새 없이 누군가 청소하는 큰 공장의 경내처럼 여겨졌다. 휴지통도 거의 없다. 일회용 커피잔을 들고 30여 분을 걷다가 운이 좋게 쓰레기통을 발견했다.

울산은 4개의 구와 1개의 군, 44개의 행정동, 12개 읍면으로 구성됐다(출처: 울산광역시 누리집)

볼일을 마치고 오후 4시부터 관광객 모드로 바꿨다. 뻥 뚫린 동해가 보고 싶었다. 숙소를 예약한 것을 빼놓곤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에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지인은 '간절곶'을 추천했지만 그곳을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다.


간절곶에 정차하는 버스는 405번과 715번이다. 405번 버스의 하루 운행 횟수가 8회에 그친다. 출발지인 울산대학교 정문에서 다른 버스인 715번을 타기 위해서는 한 차례 환승이 필요했다. 39개 정류장을 거치고 1시간 30분가량 이동해야 한다. 정류장에 내려서는 10분을 걸어야 한다. 복귀도 문제였다. 이때부터 느꼈지만 울산의 명소는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어려웠다.

저녁을 기다리는 백사장이 한적하다

첫 목적지로 일산해수욕장을 선택했다. 거리뷰를 보니 해변에 따라 카페가 있었다. 정차하는 버스는 5편이고 배차 시간이 길지 않았다. 시내를 통과하는 장점도 있었다. 도심을 구경할 기회였다. 울산대학교 앞 정류장에서 가장 먼저 온 1401번 좌석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문득 '대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면 1시간 만에 바닷가에 도착하다니…. 얼마나 많은 학생이 이 버스를 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마주친 명소는 '공업탑 로터리'다. 월계수 잎으로 둘린 지구본을 다섯 기둥이 받치는 모양으로 1967년에 세워진 탑이다.


공업탑이 유명한 이유는 '단일 지점 교통사고 발생 전국 1위'라는 기록 탓이다.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초보자가 이곳에 들어서면 2~3시간 동안 나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지금까지 나돈다. 수년 전 사고 위험을 낮추기 위해 일반적인 로터리와 다르게 회전 구간에 신호등을 설치했다. 그 모습이 독특했다.


버스는 삼산로를 달리며 울산의 중심을 통과했다. 창문 너머로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그리고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터미널이 차례로 보였다. 고속버스 터미널 옆 건물인 롯데 영플라자 건물 옥상에는 공중관람차가 느릿느릿 돌아갔다.

화학단지 내 굴뚝이 구름처럼 하얀 연기를 밤낮으로 뿜어낸다

도심에서 벗어난 버스는 미포 국가산업단지를 향했다. 이곳에 들어서면 공업 도시라는 울산의 타이틀이 이해된다. 버스는 SK에너지, 효성, 현대모비스 등의 공장 담벼락을 따라서 움직였다. 그 너머로 회색 연기를 내뿜는 수많은 굴뚝과 둥근 원통 저장소가 보였다. 도로 끝자락에는 출하를 위해 줄지어 세워진 현대건설기계의 짙은 노란색 굴착기가 눈에 띄었다.


버스가 통과한 구간은 장생포 지역의 공단이다. 울산이 고래로 유명하지 않던가. 울산대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 길로 빠지면 고래문화마을,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이 있는 고래고기 거리로 이어진다. 5000원을 내면 체험관에서 수조에 갇힌 돌고래를 볼 수 있다.


울산대교를 지나갈 때는 미리 카메라를 켜 둬야 한다. 다리는 태화강과 바다가 만나는 울산만을 동서로 잇는다. 눈길을 밖으로 돌리자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수많은 해상크레인과 선박 건조 독이 보였다. 현대미포조선의 작업장이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거제도에서 본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보다 훨씬 넓었다.

국가와 기업속에서 개인은 무의미한 존재다

교량을 건너 울산 동구로 들어섰다.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가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도시에 문화적인 요소는 전혀 없었다. 이곳은 현대중공업의 공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가족들이 사는 동네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가끔 2~3층 높이의 허름한 상가가 보였다. 주택 단지가 끝날 무렵 현대백화점과 병원, 각종 상업 시설이 밀집된 구역을 만났다.


도로 건너편은 현대중공업 단지다. 남색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다. 도로에는 조선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쉴 새 없이 어디론가 이동한다. 작업 현장에서 쓴 헬멧에 머리가 눌려서일까. 버스 뒷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남성이 고단해 보였다. 그들의 연령은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다양했다.


수원이 삼성의 도시라면 울산은 현대의 도시다. 동구는 그 표현을 대변하는 지역이다. 현대백화점, 현대광장, 현대 예술공원, 현대아파트,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 부속병원이 전신인 울산대학교 병원까지 도시의 모든 것이 '현대'로 채워졌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는 공장 외벽의 문구도 기억에 남았다.

파도가 잔잔하게 부서지고 있다

일산해수욕장은 길이 600m의 아담한 백사장이다. 거리가 가까운 탓에 인근 주민들이 자주 오고 간다. 해안선을 따라 카페와 횟집을 비롯한 여러 식당이 운영 중이다. 불꽃놀이 용품을 파는 노점상도 보이고 오락실과 야구 배팅 시설에서는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다.


백사장에 서자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얀 모래는 잘게 부서져 부드럽게 밝혔다. 젊은 연인부터 반려견과 산책하는 가족들까지 이용객들은 다양했다. 해수욕장을 등지고 왼쪽에는 수산물을 파는 일산 활어시장, 오른쪽에는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은 후 동해의 바위 밑으로 잠겼다는 대왕암공원이 위치한다.


해수욕장을 잠시 걷고 인근 카페로 들어섰다. 이 층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저녁이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강원도의 수평선을 볼 때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은 없었다. 남해처럼 느껴지는 동해가 다소 어색했다. 멀리서 온 관광객에게 추천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곳이다.

여행의 재미는 우연한 발견이다

바다 구경을 마치고 도심으로 향했다. 133번 버스를 타고 성남동으로 이동했다. 미리 알아둔 선술집이 위치한 곳이다. 태화강 변을 따라 울산 동헌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려서 본 동네가 심상치 않았다. 흔히 말하는 핫플레이스의 분위기가 전해졌다. 작지만 현대적인 식당과 술집이 즐비했다. 지도를 켜고 술집을 향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청춘 고복수의 길'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그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황색 동상이 턱을 바치고 있었다. 그는 1900년 초부터 중반까지 활약한 울산 출신의 대중가수였다. 국내와 중국 동북 3성에서 인기를 끈 가수라지만 이름만큼이나 그가 생소했다.


술집에 자리가 없었다. 다시 다른 곳을 찾기는 귀찮았다. 정처 없이 동네를 걸었다. 운이 좋게도 중앙동은 구경거리가 많았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젊음의 거리, 만남의 거리, 문화의 거리, 먹자 거리가 조성된 곳이다. 중고등학생부터 중년의 부부까지 다양한 계층이 거리에서 주말 저녁을 즐겼다. 허름한 간판으로 맛집임을 증명하는 식당들을 골목에서 발견했다. 다시 울산에 온다면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전통시장과 젊음의 거리가 조화를 이룬 중앙동이다

어느덧 시곗바늘이 10시를 가리켰다. 서둘러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평소보다 많이 걷고 버스를 오래 탔더니 피곤했다. 운동은 제대로 한 셈이다. 컨버스를 신은 탓인지 발바닥이 유독 아팠다. 숙소는 고속버스 터미널 건너편의 주상복합 아파트다. 캔맥주를 사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숙소는 37층이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울산의 야경이 유독 반짝였다. 북쪽으로는 도심과 멀리 태화강이 보였다. 동쪽으로는 불이 꺼진 어두운 공단과 쉴 새 없이 연기와 빛을 내뿜는 화학단지가 시야를 채워주었다.


이용한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다. 거실에서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베란다에 서서 야경을 구경하는 나에게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장소를 알려줬다. 진한 화장과 검은색 구슬 모양의 귀걸이를 한 그분은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화합로가 태화강으로 이어진다

울산의 경기가 어렵고 인구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걱정스러움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아파트를 네 채나 보유 중이라며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놨다. 구석의 책장에는 부자가 되는 법, 성공하는 법, 이런 부류의 서적이 몇 권 보였다.


울산의 인구가 어디로 빠져나갔냐고 예의상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고 양산으로 온다고 해서 그곳으로 나갔단다. 양산은 호황이라면서 그곳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투자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투자하라고 말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탐욕에서 허우적대는 그가 가여웠다.


맥주를 마시면서 내일 일정을 세웠다. 울산에서 가장 들르고 싶은 곳을 드디어 간다는 생각에 설렜다. 두 캔을 비우고 다시 테라스에 섰다. 도심의 별들은 여전히 빛나고 화려했다. 그러면서 절대 잠들지 않는 도시에게서 묘한 두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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