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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May 26. 2018

외나로도에서 녹동항까지

5월에 만난 고흥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여행만큼 즐겁다. 8개월 만에 떠나는 ‘캠낚(캠핑+낚시)’이다. 기분이 들떴다. 출발 하루 전날 짐을 챙기기에 바빴다. 낚싯대에 쌓인 묵은 먼지를 닦아냈다. 동네 낚시점에 들러 초릿대를 수리하고 삭은 스피닝릴 원줄을 바꿨다. 새로운 검을 받아 든 무사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집에 돌아와서 캠핑용품을 준비했다.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던 텐트, 매트리스, 침낭, 의자, 아이스박스, 버너, 불판을 창고에서 꺼냈다. 배추김치와 파김치, 부추김치를 크린백에 담고, 플라스틱 용기에 된장을 펐다. 바비큐에 사용할 소금도 챙겼다. 세면도구, 전자기기, 옷가지 등의 개인용품을 여행용 배낭에 쌌다. 채비가 담긴 태클 상자와 밑밥 통을 옮겼다. 낚싯대는 3개를 준비했다. 모든 짐을 베란다에 모아 놓았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아. 짐이 많다.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 당분간 캠핑을 가지 않을 것 같다.

이른 새벽, 차에 짐을 싣고 떠났다. 뒷유리 시야는 완전히 막혔다. 미리 알아둔 낚시 가게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달렸다. 낚시점은 고흥우주휴게소에 있다. 고흥에서는 ‘우주’가 널리 사용되는 접두어다. 우주해변, 우주펜션, 우주식당, 우주당구, 우주건설, 우주전력, 우주공인중개사 등 ‘우주’를 넣은 상호가 흔하다.

우주낚시(고흥읍 우주항공로 4177, 061-833-1888)

여행을 다니며 매번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지방으로 갈수록 사람들의 화법이 직설적이고 솔직하면서 감정적이라는 점이다. 이번에 만난 낚시 가게 사장도 그랬다.


가게 안은 낚시꾼들로 붐볐다. 사장 부인은 계산대에서 손님을 상대하기에 바빴다. 일단 혼잡함을 피해 구석에 놓인 커피자판기로 향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사장과 대화할 기회를 노렸다. 지역, 시기, 날씨에 따라 사용되는 채비가 다르다. 그것을 물어봐야 한다. 낚시 포인트와 최근 조황도 알아봐야 한다. 미끼도 사야 한다. 참고로 도심에서 파는 지렁이는 신선도가 떨어진다. 이처럼 현지 낚시 가게에 들려야 할 이유는 넘친다. 커피를 다 마실 때쯤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사장도 여유가 생겼다.

동행한 친구는 원줄을 사서 사장에게 감기 작업을 부탁했다. 줄을 감는 그에게 갑오징어 낚시에는 어떤 봉돌을 사용해야 하는지 물었다. “인터넷에 쳐봇쇼.”라고 던진다. 당황했다. 의도가 헷갈렸다. 어차피 바로 알려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 인터넷에는 10~12호 봉돌을 사용하라고 나왔다. 내용을 전했다. 사장은 고소하다는 어투로 “초등학생 수준이다, 초짜들이 인터넷에 올린다.”며 “4~5호를 샀쇼”라고 알려줬다.


요지는 인터넷에서 나온 낚시정보를 맹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인터넷은 가격 바가지를 피하고자 참고하는 정도로 사용해라”고 말한다. 특히 장비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살 것을 강조했다. 이어 “우리들은 유튜브 그런 거 모른다.”며 “매장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물어봐야 뭘 알려주지.”라고 핀잔준다.

작업이 끝났다. 갑오징어 낚시 봉돌과 바늘, 원투낚시에 사용할 봉돌과 감성돔 바늘을 샀다. 미끼도 챙겼다. 계산하면서 낚시 포인트를 물었다. 감성돔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열었다. 미리 조사해둔 지점이 괜찮은지 사장에게 물었다. 그가 더 정확한 지점을 알려준다. 던질 방향까지 가르쳐 준다. 핀잔을 들은 대가다. 밑걸림이 적은 곳이냐고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현답이 돌아온다. “인생은 편한 길로 가고, 낚시는 어려운 길로 가라. 걸리는 곳에 돔이 숨어있다. 그곳이 좋은 곳이다. 안 걸리는 곳에서는 장어만 나올 뿐이다.”


낚시가게를 뒤로하고 고흥 읍내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박지성 공설운동장이 보인다. 박지성은 고흥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수원 세류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지도를 보니 김태영 축구장과 김일 기념체육관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넣은 시설명은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처럼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장날이 아닌 고흥 시장은 한산하다.(고흥읍 시장천변길 29-3)

읍내에 도착했다. 군내버스 정류장에 등이 굽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있다. 장을 보기 위해 고흥 시장으로 향했다. 장날이 아니다. 한산하다. 입구에 있는 하나로마트에 들러 생수, 컵라면, 화장지, 물티슈를 샀다. 여기에도 할머니들이 많다. 힘겹게 맥주와 막걸리를 계산대에 올린다. 동작이 더디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원에게 준다. 뒤에 줄이 길다. 도시에는 한숨을 쉬며 눈치 주는 사람이 흔하다. 여긴 그런 거 없다. 할머니도 계산원도 나도, 내 뒤에 선 아저씨와 아줌마도 느긋하다.

너무 느긋해서 탈이기도 하다. 마트에서 나와 분식집으로 갔다. 김밥 두 줄을 주문했다. 주인이 오래 걸린다고 말한다. 먼저 온 손님 두 명이 자리에 앉아 있다. ‘늦어봐야 얼마나 늦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아주머니는 소위 말하는 ‘멀티 플레이’가 안 된다. 손도 느리다. 먼저 들어온 주문 두 개를 처리하고 나서 김밥을 말기 시작한다. 김밥을 건네받고 차로 돌아갔다. 친구가 한마디 한다. “너 혼자 김밥 먹고 오는 줄 알았다.”

외나로도 하촌마을로 출발했다. 첫 낚시 포인트다. 엄청 멀다. 고흥읍에서도 한 시간 가량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나로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로 나뉜다. 각 섬은 다리로 연결됐다. 나로우주센터는 외나로도 북동쪽에 있다.


다리를 지나 나로도에 들어섰다. 시간 뒤에 숨어있던 기억들이 알알이 터져 나왔다. 20년 전, 친구 아버님 모임에 붙어 나로도 해수욕장(현재 나로우주해변)에 왔었다. 당시 함께 왔던 친구 A는 호주로 이주했다. 결혼해서 잘 산다. 다른 친구 B는 캠핑카를 타고 호주 여행 중이다. 우리를 챙겨줬던 친구 B의 아버님은 10년 전쯤 돌아가셨다. 등산 중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아버님이 주신 조니워커 블루라벨은 정말 맛있었다.

나로도 길은 험하다. 여수 돌산 가는 길과 비슷하다. 오르막과 내리막, 급커브가 반복된다. 왕복 2차선을 4차선으로 넓히려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투입된 장비를 보니 공사는 꽤 오래 걸릴 것이다. 시골이 그렇다. 도시에서는 굴착기 10대로 후딱 끝내는 작업을 여기에서는 1대로 꾸준히 한다. 그 차이다.

포인트에 도착했다. 지형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온 이름 없는 ‘만’이다. 양측에는 육지가 돌출한 ‘곶’이 있다. 내륙을 등지고 왼쪽에는 방파제가 오른쪽에는 테트라포드(TPP)가 파도를 막고 있다. 우리는 방파제 끄트머리에 짐을 풀었다.

하촌마을 포인트는 외나로도 최남단이다.(봉래면 외초리 87-4)

기상예보에 따르면 이날 북동풍이 최대 13m/s로 매우 강하게 불었다. 날아가는 의자를 겨우 잡았다. 바람이 세면 원하는 지점에 낚싯대를 정확히 던지기 어렵다. 줄과 낚싯대가 흔들리면 입질을 보기도 힘들다.

입질은 있었다. 작은 노래미와 쏨뱅이가 올라왔다. 큰 고기는 나오지 않았다. 두 시간 만에 낚싯대를 접었다. 북쪽 5분 거리에 있는 중촌 방파제로 자리를 옮겼다. 허탕은 계속됐다. 입질조차 없었다. ‘첫 포인트에서 조금 더 버텨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오후 3시가 넘어갈 무렵, 지금까지 먹은 음식은 달랑 김밥 한 줄이다. 서서히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아무것도 잡지 못할 거란 불안감이 현실로 바뀌고 있었다.

중촌 방파제 주변으로 해초가 얄랑이며 떠다닌다.(봉래면 외초리 염포마을)

서서 졸 정도로 피곤했다. 일단 낚시 가게 사장님이 알려준 나로2대교와 나로1대교 포인트로 이동했다. 둘러보니 물색이 탁했다. 중수도처럼 바닷물이 흐리면 장어만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장어는 작년에도 손맛을 많이 봤다. 관심이 없었다. 미리 와 있던 낚시꾼들의 고기 보관 가방을 열어보니 텅텅 비어있다. 친구와 상의 끝에 녹동항으로 이동했다. 갑오징어를 잡기로 했다.

나로1대교에서 녹동항까지는 약 한 시간 거리다. 가깝지 않다. 대안이 없었다. 일단 이동했다. 차 안에서 낚시 커뮤니티 게시판을 봤다. 한 회원이 장흥 정남진 해양낚시공원에서 낚은 감성돔 8마리 사진을 올렸다. 감성돔이 아직 고흥까지 올라오지 않았다는 정보도 확인했다. 외나로도는 정남진보다 더 남쪽인데…. 무엇이 맞는 걸까.

녹동항은 편안했다. 방파제는 깔끔했고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서 안전했다. 바람도 약했다. 바닷물도 나로대교와 달리 푸른색이다. 낚시할 공간도 많았다. 가족, 연인 단위로 온 낚시꾼들이 많았다. 외진 첫 포인트와 달리 포근했다.

소록대교 아래 녹동항 방파제에 낚시꾼들이 앉아 있다.

옆자리 아저씨가 손바닥만 한 볼락을 잡았다. 크기가 작다. 함께 온 아주머니가 “우아. 크다”면서 호탕하게 웃는다. 대물만 노리던 반대편 사람은 여전히 허탕만 치고 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비교되는 곳이 낚시터다.


마지막 포인트도 꽝이다. 큰 입질이 한 번 있었다. 챔질 기회를 놓쳤다. 하필 핸드폰을 만지고 있을 때 초릿대가 움직였다.

낚시는 낚시터에서 회는 회센터에서 해결하는 게 정상 아닌가. 저녁에 추가 일행 3명이 합류한다. 그들은 온종일 잡은 고기 사진을 올리라고 압박했다. 우리는 잡기에 바쁘다고 둘러댔다. 빈손으로 갈 순 없어 횟감을 사야 했다.


녹동항 수협 수산물센터(도양읍 봉암리 2792)

녹동항 수협 수산물센터로 갔다. 강진 마량항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작지만 알차고 활력이 넘친다. 주요 섬을 연결하는 거점이다 보니 이 지역에서는 요충지다. 회센터 내부는 좁지만 어종이 다양했다. 상인들과 손님들이 시끌벅적하게 가격을 흥정한다. 우린 5만 원을 주고 광어를 샀다. 덤으로 작은 우럭 두 마리와 멍게, 해삼을 썰어서 챙겨줬다. 포장을 기다리며 진열된 수산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복이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에 분홍 갑오징어 두 마리가 헤엄친다. 셔터를 눌렀다. 아주머니가 “이렇게 이쁜데, 모델비 주쑈”라며 장난친다.

횟감을 챙기고 인근 마트에서 장을 봤다. 곧장 해창만오토캠핑장으로 출발했다. 30km, 40분 거리다. 캠핑장은 일반캠핑, 오토캠핑, 글램핑장으로 나뉜다. 온수 샤워장, 취사장, 매점, 화장실, 족구장, 낚시터를 갖춰졌다. 오토 캠핑장에는 전기 분전반이 설치됐다. 의자와 테이블이 붙어 있는 원목 야외테이블도 있다. 우리는 오토캠핑장 사이트 두 곳을 빌렸다. 이용요금은 사이트 1개 기준 비수기 1박에 1만 6000원이다.

해창만오토캠핑장(hcmcamping.com, 포두면 팔영로 405)

야영장의 밤은 언제나 설렌다. 일회용 접시에 회를 담고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옆 사이트에서 장난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른들의 수다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올리면 캄캄한 하늘에 작은 빛들이 간신히 번뜩인다. 그렇게 마시다, 말하다, 취하다, 잠이 든다.

우리 텐트 뒤편에서 초등학생 남자아이 2명과 여자아이 1명이 어울려 논다. 해먹을 타겠다면서 서로를 밀친다. 그러던 중 한 남자애가 여자아이에게 “너 레즈비언이냐?”고 윽박지른다. 내 귀를 의심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동성애 관련 교육은 논란거리다. 17년 9월 서울 송파구 한 초등학교에서 A교사가 학생들에게 동성애와 페미니즘을 교육했다. 일부 학부모단체가 해당 교사에 대한 파면을 교육청에 요구했다. 교육이 없는 공간에서 편견이 자란다. 자신의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알 기회가 저 아이에게 있을까.

해창만 간척지 호수에 물이 가득 찼다.

다음 날,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팔영산 지구를 거쳐 고흥을 빠져나왔다. 고흥반도 동쪽에 위치한 팔영산에는 8개 봉우리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정상에 오르면 대마도까지 보인다.

5월의 고흥은 수확으로 바쁘다. 마늘을 꾹꾹 실은 1톤 트럭이 위태한 모양새로 도로를 달린다. 밭에 쪼그려 앉은 농부들이 손으로 마늘을 뽑고 있다. 마늘 통에 상처가 날까 봐 조심스럽다.

한창 익어가는 보리들도 바람에 맞춰 몸을 출렁인다. 녀석들이 빈틈없게 밭을 채웠다. 보리는 10~11월에 파종하고 5~6월에 수확한다. 제주도는 5월 말, 남부지방은 6월 초, 중부지방은 6월 중순에 거둔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덥다”, “춥다”, “비 온다”로 자연을 느낀다. 시골에서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생명을 보면서 만물을 감지한다.

 

아직 둘러보지 못한 고흥이 남아있어 아쉬웠다.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을 방문하지 못했다. 우주와 물리학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우주과학관은 꼭 한 번 가야 할 곳이다. 거금도도 마찬가지다. 편안해서 너무 좋았다는 지인의 강력 추천이 맞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 조만간 한 번 더 고흥을 가야겠다.


기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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