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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사고(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를 사고(생각하고 궁리함)해보다

by 시니

그 일은 사고다.

지안의 의지와는 거리가 가까운 편이 아닌 그저 사고!

이 사고가 지안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하지만 지안은 47년간 살아오는 동안 사고가 많았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래도 지안은 가슴에 슬픔 하나, 힘듦 하나가 얹힘을 느낀다.

"나 아프대.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도 받고 치료도 몇 년간 받아야 된대."

남편 준우는 전하기 너머로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마치 나라는 존재가 자신이 아니라 모바일게임 가상인물인 것처럼 말한다.

지안은 또 하나의 사고가 추가되었을 뿐이라고 별일 아니라고 되뇌면서 뛰어오르는 감정과 호흡을 누른다.

"그랬구나. 걱정이다. 괜찮아? 잘 될 거야. 힘내고. 저녁때 집에서 자세한 얘기 하자. 이따가 봐."라고 말하곤 지안은 전화를 끊는다.

지안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온다.

눈부시게 환하고 밝은 바깥은 집안과 대조적이어서 지안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도로에는 군청색 스포츠카 한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지붕을 젖히고 달리다 보니 운전자의 모습도 보인다. 커다랗게 틀은 팝음악이 공중에 퍼진다.

자전거 타는 무리들도 지나친다.

강아지를 데리고 걷는 가족도 있다.

내일부터는 병원에 가 있으니 이런 장면은 퇴원 후에 보게 되겠지.

어쩌면 오늘 보이던 게 그 어떤 날에는 안보이겠지.

병원...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아는 곳.

지안은 27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 속에 있어서 피할 수도 없는 사고.

다른 사람은 경미해서 하루 이틀 만에 퇴원을 했다.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한 채 차 속 그 자리에 앉았던 것을 후회하고 돌이키고 싶었다.

아니 그 차를 탄 것을 후회했다.

8개월간의 치료와 재활로 일상에 복귀는 했지만 틈만 나면 괴롭히는 허리 통증.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 일생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병원생활 8개월간 사람의 삶과 죽음을 보게 된 터라 이만큼 살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지안은 문득문득 병원 생활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온몸을 다 다쳐와서 대수술을 받고 결국에는 걸어 나간 지안과 비슷한 나이 또래.

다리를 다쳐 수술을 했지만 결국은 지팡이를 짚게 된 아주머니.

장비 없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뇌의 반쪽은 사라진 청년을 매일 재활 치료 시키던 아주머니.

하반신 마비로 움직이지 못해 입으로 떠들기만 했던 아주머니.

심한 다이어트를 하다 위 수술까지 받았으나 결국은 손톱까지 까매져서 죽은 소녀.

대장암에 걸려 빼짝 마른 몸으로 병실로 왔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결국은 죽게 된 새댁.

아빠의 친구가 안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부딪혀 떨어져 왼쪽팔 신경이 끊어져 흐느적 걷던 6살 귀여운 꼬마.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는데 신경을 건드려 하반신 마비가 온 매일 화가 나 있던 아저씨.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지안과 똑같은 부위를 다쳤는데 신경이 끊어져 하반신 마비가 온 동갑내기 남자.

지안은 하루하루 나아졌는데 그 남자는 하루하루 말라갔다.

비슷한 사고였고 다친 부위도 비슷했는데 결과는 달랐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누구는 걷게 되고 누구는 걷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사고일 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사고는 사고일 뿐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일생 자기 몫으로 안고 간다.

걷는 동안 병원에서 만났던 이 밖에도 많았던 사람들까지 아낌없이 소환해서 떠올린다.

내일부터 다시 병원생활이다.

환자가 아닌 보호자로 생활하게 된다.

지안의 어머니처럼 준우의 지안이가 되는 것이다.

준우의 병이 무엇이고 얼마나 입원을 해야 하고 수술이 필요한 건지 등 저녁에 대화를 나눠야 된다.

지안은 이미 놀랄 준비와 병원에 챙겨갈 물건 준비를 머릿속에서 마쳤다.

그래야 덜 놀라고 덜 성급해질 것 같아서이다.

밝은 햇살을 쬘 시간이 지금 밖에 없을 것임을 느끼면서 아주 길게 숨을 들이키며 환한 햇살을 마신다.

지안은 '다 잘 될 거야, 지금까지도 다 잘 되었으니'하는 생각을 한다.

7천보를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순간 준우에게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전화를 받는 지안의 운동복 입은 뒷모습에 눈부신 햇살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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