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번째 이야기
여러분들은 편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너무나 많은 상황과 현상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선 편견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습니다.
[편견 : 특정 집단에 대해서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나 견해를 가지는 태도.]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정서와 평가를 동반한다고 하는데요. <편견의 이유> 저자, 프라기야 아가왈은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무의식적 편향'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탑재한 생각 도구에 가깝다. 예컨대 자연 세계에서 정확성보다 판단 속도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간단한 사고 과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졌고 이것이 편견의 일종이 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다양한 환경에 의한 습득을 통해서 편견에 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은 생각하는 감정의 동물'이기에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공정과 평등을 추구하지만 이는 이성적인 활동이며 편견은 보다 인간의 내면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먼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접근해봤습니다. 과거에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고 한다면 이런 경험들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물은 무서워, 물에 빠지면 난 죽고 말 꺼야'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런 생각들이 표면에 편견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편견이 상황이 아닌 어떤 특정 대상일 경우 훨씬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유년기 때 자신을 괴롭히고 다투던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면 성인이 되어서 그 친구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보면 어떨까요? 자신도 모르게 이 사람은 나에게 헤를 끼치거나 나쁜 사람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한 편견을 '선입견' 이라고도 합니다.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넓혀보았을 때 어느 인문학 수업의 한 대학 강의에서 담당 교수는 현대인들의 편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편견을 가지는 그 이유는 '쉽게 판단을 하기 위해서'이다. 대부분 바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상황을 파악하려고 한다고 하네요. 어떤 상황을 맞이 했을 때 전후 사정을 고려하기보다 '자기 기준에 맞게, 얘는 이래서 이랬을 거야'라고 생각을 해버린다는 것이죠. 결국 사람이 처음 접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면 그 정보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스포츠에서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우리나라 출신의 세계 정상급 선수이자 슈퍼스타 '손흥민' 하지만 유럽은 아시아계 선수를 슈퍼스타보다는 최고의 '일꾼'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본머스대학교 사회학과 주임강사 임현주 박사에 따르면, 손흥민을 다루는 언론은 그의'근면성, 기강, 효심'에 집중된 경향을 보입니다. 임 박사는 그가 슈퍼스타의 위상을 누린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는데요. 슈퍼 스타는 근면 성실보다는 주로 '비범함'과 '경이로움', '천부적 재능'으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동양인에게 떠올리는 역할은 슈퍼스타보다는 '순종적 시민'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동양인을 향한 편견이 손흥민 선수를 향한 차별적 언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포츠 세계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규정음 엄격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심심치 않게 이런 상황과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류사 속에서도 편견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흑인을 흑인으로 부르고, 백인을 백인이라고 부르는 한, 인종차별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black’이라는 말 자체에 ‘오염된, 더러운, 비관적인, 암담한, 불길한, 흉조의, 병적으로 이상한, 흉악한, 불명예스러운, 심지어 죽음, 패배, 위반, 악을 상징한다’고 적혀 있거든요. 반면 ‘white’에는 순백, 결백, 무구, 더럽혀지지 않은, 정직한, 성실한, 공정한, 운이 좋은 등 온갖 좋은 의미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흑인의 피부는 검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가장 진한 경우에도 고동색에 가깝지요. 백인의 피부도 하얗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붉은빛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붉은빛이 돈다고 해서 백인을 ‘홍인(紅人)’이라고 부른다면? 이미지가 확 나빠지겠지요. 이처럼 말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자체가 차별적입니다. 그러면 흑인은 왜 흑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요? 백인들이 인종을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흑인들이 분류했다면 자신을 흑인이라고 부르진 않았겠지요.
저의 직업인 건축적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편견에 맞선 가장 대표적인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최근 별세를 한 ‘자하 하디드’입니다. 그녀의 건축디자인은 건축계에서 독창성으로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여성 최초, 최연소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축가!! 그의 이력 이전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건설되지 않은 홍콩의 설계 컴피티션 우승작 에피소드.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하디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젝트를 설계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고, 다음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이루어 나갔습니다. 자하는 버텼고 꿈을 좇았고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어디에도 없던 길을 만들고 당당히 걸어갔으며, 새로운 길을 꿈꾼 사람, 세상의 편견에 맞서 누구보다 강해져야 했던 건축가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 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상상을 자신의 이름으로 지은 수백 개의 건물로 증명해 낸 사람입니다.
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 점검을 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적어보니 왜 이렇게 많은지 저도 스스로 놀랐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사람을 상대했을까요? 자라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생겨버린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분류해보자니 저의 행동과 말 그리고 인간관계들, 제가 하는 일에서까지 두루두루 적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행동과, 말에 관한 편견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누군가 올바른 지적을 해주지 않아서인지 저는 생각보다 자신도 모르게 편견을 갖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모르거나, 경험하지 못해서 그것이 편견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게 이어져 어른이 된 지금은 '익숙함'을 선호하기 때문에 편견이 더 크게 자리 잡은 건 아닐까요? 저의 행동과 말 중에 몇 가지를 적어보면 '비싼 거 샀네~ 집이 부자인가?', '남자는 씩씩해야지, 왜 툭하면 여자처럼 울어?', '뚱뚱한 걸 보니 엄청 먹거나 게으를 거야', '여자애가 무슨 축구를 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가난한 거야', '여자애는 분홍색이고, 남자애는 파란색 아니야?' 등등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것이 나의 말과 행동에서 툭툭 나왔고, 어느 순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고정된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고립되어감에도 굉장히 무지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사람 관계에서의 편견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워낙 진정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진심으로 다가가면 상대도 그럴 거라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미 정해놓은 기준에 의해서 반대의 반응이 다가오면 서운해하고 불편해하며 관계가 틀어진 경우도 점점 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쩌면 내 단편적인 기준 때문에 살다 보면 스치는 인연도 많은데 없다고 생각을 했던 말 그대로 아주 어리석은 편견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내 안에서가 아닌 자꾸 외부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던 내 모습을 자주 발견했습니다.
세 번째로 제가 하는 건축가의 업무에 대한 편견입니다. 저희들이 흔히 '디자인은 답이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창작을 해보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을 하실 것입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을 업무에 투자해 더 나은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이 부분이 제가 갖고 있는 색안경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래야만 좋은 계획안이 나올 거라는 오류가 존재했죠. 그렇다 보니 업무시간의 끝을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주 6일, 7일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워라벨은 물론 가정사에도 문제가 생겨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업무 집중도에 문제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걸 시간의 부족이라는 편견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2020년 이후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어서도 기존 성과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집중에 따른 부분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편협된 시각이 아닌 객관적이면서도 올바른 시각과 가치관을 갖기 위해서 저는 이런 노력을 해보고 있습니다.
#1. 새로운 장소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은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경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변화하는 트렌드에 관심을 갖는 것을 통해서 다양성을 느끼고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 스스로 규정을 짓지 않도록 노력해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살아오면서 자리 잡은 그릇되고 편협한 시각에 대해서 더 이상의 오류들을 범하고 싶지 않아서 실천해보고 있습니다.
#2. 온라인 네트워크(SNS) 충분히 활용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난 후 방어기제 중 하나로 타인의 생각은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동안 철저히 자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으나 내 생각만 분석하는 것은 자칫 아집에 휩싸일 수 있기에 SNS를 통해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고 조금씩 소통을 중요시해보고 있습니다.
#3. 시간계획표(Time Table) 작성해 보기
회사에서 근로계약 근무시간인 일 8시간 안에 업무를 마무리하려고 노력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계획표와 일정표를 작성하고 지속적으로 확인,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효율적이게 움직이고 있고, 회의시간도 시간을 정해놓고 하고 있습니다. 근로 시간의 새로운 기준과 패러다임에 맞게 일을 하여 워라벨의 밸런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껴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Note
우리는 입체적이고 복잡한 존재입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세상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편견 때문에 선택의 순간에서 잘못된 판단과 내게 다가오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나를 알고 내 편견에 맞서 열린 사고와 올바른 사고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나의 운명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자기의 편견에 대해서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꼭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