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전시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선 Dec 02. 2019

유목하는 고깔, 유목하는 소금

홍지희 개인전 : We make a plant (대안공간 눈)


     하얀 벽면과 회색 바닥으로 이루어진 공간 안에는, 공간의 모서리나 기둥, 좌대를 중심으로 소금이 쌓여있다. 콘크리트 바닥과 흰 벽에 기대어 쌓인 ‘소금산’에는 뒤집어진 원뿔 모양의 물체가 열대 지방의 식물이나 바닷속 산호의 생태처럼, 불규칙하게 흩어진 점들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여기에 《We make a plant》라는 이 전시의 제목이 더해지면서, 원뿔들의 모임은 한층 더 식물의 군집으로 보인다. 거꾸로 된 고깔 형태의 입체물은 부분적으로 모여서 소금산을 파고들어가 있다. 드넓게 펼쳐진 소금에 비해 ‘반(反) 고깔’의 입체물은 작고 단순한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태풍의 눈처럼, 흩어진 주변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개미조차도, 소금산 위에서는 관심의 대상이 될 정도로 ‘반 고깔’은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배경으로서의 소금을 대비시킨다. 반 고깔 형태는 이번 전시의 사진 작업에도 등장한다. 벽면에 드문드문 거리를 두고 전시된 사진들은, 고깔 형태의 입체물이 자리를 옮겨 바다의 모래 위나 잔디 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We make a plant》Installation view, alternative space noon


     사진 속에서 볼 수 있듯이 ‘반 고깔’은 거주지를 옮겨 다닌다. 《We make a plant》전시장의 소금산에 꽂혀있는 고깔들도 전시가 끝나면, 사진 속의 대상들처럼 작가와 함께 이동을 하게 된다. 또한 전시장을 메우고 있는 소금 무더기도 전시가 끝나면 전시를 한 지역의 주민들 및 소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부된다. 결과적으로 전시장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작가의 손을 통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의 손을 통해서 이동한다. 때문에 이 고깔과 소금은 ‘유목하는 고깔’, ‘유목하는 소금’이다. 이 고깔들은 처음부터 작가의 의도에 의해 관객 참여적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고깔 군집은 전시관 근처의 수원 주민에서부터, 서울이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까지 공간을 방문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소금산 위에 꽂아졌다. 전시장의 소금이 원하는 사람에게 기부된다는 점에서 전시의 철수 과정 또한 관객 참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홍지희 작가는 성장과정에서 잦은 이사를 겪으면서 자신의 거주지에 대한 고정된 정체성을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더불어 도시 개발로 인해 식물들이 생태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곳에 버려지거나 뿌리가 잘려나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작가는 유기에 대한 사회적 문제점 또한 인식했다. 고깔과 소금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역적 정체성을 하나로 통일시키지 못하는, 출발점도 도착점도 정해지지 않은 유목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작업에서 고깔은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하고, 소금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타인에게 부여된다. 작가는 대상들이 쉽게 유기되는 상황을 익히 보아왔음에도, 자신의 작업에서는 오히려 이동함을 통해서 대상들이 의미를 얻는 이동성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냈다.

     잦은 이사나 도시개발로 인한 유목이 정착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안쓰러움과 허망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데 반해, 홍지희 작가의 작업 속의 유목하는 존재들은 전자와는 반대되는 유쾌함을 가지고 있다. 소금의 경우 자신이 쓰임새가 있는 곳에 소금으로서 이용되도록 떠나고, 고깔의 경우 마치 작가의 반려 생물처럼 작가와 함께 여러 나라의 방방곡곡을 여행을 한다. 만약 고깔이 생물처럼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여행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만 같다. 이처럼 작품 속의 존재들은 이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이동을 하고, 여러 곳을 여행함으로써 보다 ‘의미가 있는 유목’, ‘가치가 있는 유목’을 할 수 있게 된다.


<We make a plant>, 2018, canvas print, 60 x 50 cm


     작가는 미술이 ‘자연을 보다 심층적으로 조우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홍지희 작가 자신의 작업도 자연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한다. 《We make a plant》는 갈 곳이 없는 자연의 식물들, 더 나아가서는 정착이 어려운 동물 및 다양한 존재들을 무조건적으로 어딘가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동성을 가지되 깊은 뿌리가 없어도 가치 있을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보여준다. 즉 ‘유목 대(對) 정착’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머물 곳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닌 ‘가치 있는 유목’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관객들은 이 작업에 참여하여 고깔을 스스로 만듦으로써 의미 있는 유목을 생산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We make a plant》에서 소금산과 반 고깔들은 ‘유목하는 존재’이지만, 이들은 막연히 방황하거나 부수물으로서 버려져서 갈 곳이 없어 유목을 하는 것들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역할에 맞는 이동 혹은 자신이 여행의 주인이 되는 이동, 즉 존재가 유목의 주도권을 가지는 ‘의미가 있는 유목’, ‘가치 있는 유목’을 한다. 이에 더불어 작가는 이러한 의미 있는 유목의 생산에 관객이 참여하게 하면서, 관객 또한 유목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도록 한다.

     현대의 사물 및 생물 등의 많은 것들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새로운 것이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이전의 것들은 버려지고 있다. 버려진 것들은 머무를 곳이 없어 방황하는 허무한 유목을 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유기동물, 재개발 문제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사회 곳곳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있다. 때문에 유목 및 이동성에 대한 생각이 작업의 주제로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홍지희 작가의 작업은 이와 같은 이동성, 더 나아가 버려짐과 관련된 문제들을 품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문제의식을 전달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유목을 하면서 새로운 대지와 함께하게 된 고깔과 소금’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느꼈느냐고 먼저 묻고 있다.


《We make a plant》Installation view, alternative space noo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