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전시 서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선 Apr 08. 2021

익숙하고 오래된 블루

진솔 개인전: Lachrymatory (메타포디자인갤러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수신인 없이 적어두기만 했다. 만나지 못한다고 너도나도 말했지만 우리는 규칙을 이해한다기보다는 참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어차피'로 시작하는 문장과 '어떻게든'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자주 뒤척였다. 어차피 이제는 만날 수 없었고, 어떻게든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어느 빗금 사이로 차올랐다가 볼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마음을 차곡차곡 쌓다가 흘러넘칠 것 같으면 두 눈이 붉어지도록 참아야 했다.


진솔은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슬픔을 해소하지 못하고 제 몸 어딘가에 쌓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진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 물꼬를 만들기로 했다. 전하지 못한 말을 적듯이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을 캔버스에 쌓아 올렸다. 과거의 희고 옅었던 색은 깊은 바다처럼 점차 채도와 명도가 짙어졌다. 경쾌한 도형의 모양을 탐색했던 모빌은, 물 흐르는 곡선을 따라 그 끝에 곧 떨어질 물방울을 하나 매달았다. 담아두는 것밖엔 할 수 없었던 감정이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이렇게 작가로부터 트인 물길은 작품으로 흘러가는 길만은 아니었다. 작품에서 관객으로 흐르기도, 관객에서 작품으로 흐르기도 했다.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이따금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Blue water drop. 손바닥은 떨어지는 물방울을 붙잡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웅덩이에서 건져 올리려는 것일까. 흔하디흔한 마음도 한데 모이면 아득하게 깊어진다. 하염없이 고인 마음을 두 손으로 떠 올려 바라보았다. 이제는 밖으로 쏟아내야겠다. 바닥을 보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bluewaterdrop, 2021, resin and arrylic on canvas, 116 x 89 c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