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음표를 준비하는 악보의 첫 마디에는, 먼저 정적이 있다. 고요한 가운데 귀를 기울이다 마주한 연주 전의 조율음은 여기에 낯선 균열을 일으킨다. 이렇게 음악은 시작되고 강도와 속도를 조절하면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든다. 음악을 연주하는 몸짓은 리듬을 따라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변화와 반복 사이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먼지만이 분주한 이른 새벽의 풍경을 닮은 무일의 화면은 이야기의 시작 한 부분에 있다. 이상하리만치 아무 일도 없는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오히려 침묵 속에서 사건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덤불 속 부스럭거리는 족제비의 움직임처럼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숨어 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분위기와 긴장뿐, 사건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그 방향은 다른 데칼코마니는, 평행우주처럼 수많은 시작을 동시에 품은 다중의 복선은 아닐까. 시작의 무한한 나열은 요약과 결말에 치우친 이야기에 익숙해져 버린 시간 감각을 뒤흔든다.
연주로 돌아가서, 오선지 위의 음표와 기호를 본다. 악보는 긴장과 이완이라는 음악의 본질에 충실하며 전체를 이루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까지 부지런히 지시한다. 연주자는 악보의 지시를 성실하게 소화하면서도 음악에 자신의 감정을 물들일 줄 안다. 연주자가 그렇듯, 김유진은 마음에 떠오른 음악적 심상을 정확하게 포착하면서 고유의 서정성도 놓치지 않는다. 이성과 감성, 긴장과 이완, 고정과 변주라는 두 상태의 아슬아슬한 중간지대를 오가며, 소리를 보여주기에 알맞은 크기와 위치를 가늠한다.
소리를 내던 악기의 현에서 활을 떼면, 정적으로 돌아간다. 다음을 재촉하는 조급함을 남겨둔 체 모든 것은 가능성의 상태로 가라앉는다. 소리가 없는 이 공간은 다시 한쪽으로 치우친다. 하지만 고요한 끝에도, 휘몰아치던 절정의 긴장감이 아직 남아있다.
두 작가는 무한한 시작으로부터, 이성과 감성으로부터 균형 잡기의 감각을 키우는 중이다. 작가의 내면에서 맞았던 수평은 이제 그보다 넓은 전시공간에 놓이면서 새로운 기울어짐을 만든다. 이로써 균형 잡기의 시도는 다음 차례로 이어진다. 기준이 조금 다른 그 세계에서는 당신에게 맞도록 음을 조율해야겠다.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당신을 움직이도록 이끄는 힘을 느낄 수만 있다면 연주를 시작해도 좋다. 가장 고요한 처음과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큰 흐름을 향해.
(좌) 무일, Untitled, 2021, charcoal on cotton, 200 x 200 cm
(우) 김유진, Untitled, 2021, graphite on Korean paper, 116.8 x 91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