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블로그 서비스 앱 ‘디너(dinner)’에 올린 소설 습작 <즉흥 합주 이야기 1-1>에 이런 댓글이 달린 것을 발견했다.
“음악 관련 글 쓰신 걸 몇 개 보고 영상을 찾아봤는데, 본인도 결코 남 판단할 실력은 아니던데요.. 어느 분야든 아는 게 적을수록 오만해지고 공격적이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숨김없이 말하겠다. 이 글은 단편 소설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다. 나는 이 댓글을 보고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이 자는 나에게 댓글을 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댓글을 단 것이 아닌가. 이 댓글은 자신이 쓴 대로 오만하고 공격적이다.
그가 이런 댓글을 단 <즉흥 합주 이야기 1-1>의 화자는 경험이 많고 조금 까칠한 드러머다. 이 오만한 화자는 처음 만난 연주자와 즉흥합주를 하는데 상대방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속으로 불평한다. 이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묘사했다.
소설 제목에 ‘이야기 1-1’, 그리고 글 끝에 ‘to be continued…’라고 써서 이 글이 소설이라는 것을 알렸지만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댓글을 쓴 이는 글 속의 화자가 나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영상을 찾아봤다고 하는데 누구를 봤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이름으로 검색하니 드러머 몇 명이 나오긴 한다. 나는 50대 중반을 넘어 60을 바라보고 있다. 30년 전 스쿨밴드에서 잠시 기타를 연주한 적이 있으며 아주 가끔 그때 친구들과 라이브 카페에서 합주를 하곤 한다. 지금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실력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밀려 점점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몇 년 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성향을 지녔기에 생판 모르는 남에게 저런 댓글을 남기기 위해 영상을 검색하는 수고까지 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의 ‘디너’ 계정을 찾아 들어갔다. 구독자만 10여 명 정도 있었고 자신의 글은 없었다. 사진도 없고 아무런 정보도 없다. 하지만 몇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찾아냈다. 나는 인터넷에 남아 있는 ‘그의 흔적’을 하나하나 구경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글은 가상의 소설이 아니다. 대체 어떤 글을 읽고 그가 이런 댓글을 남겼는지 알려드리기 위해 <즉흥 합주 이야기 1-1>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까 한다. 그리고 다시 그를 찾아서 벌어지게 되는 사건들을 써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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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합주 이야기 1-1>
코드 진행, 리듬, 선율 등의 순서에 맞춘 improvisation(즉흥연주)는 별로 매력이 없다.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만 '자유'롭게 뛰어 놀라고 강요받는 느낌이다. 틀 안에서의 자유는 오히려 더욱 자유롭지 못하다. 연주를 그 틀로 압박하고 얽어맨다. 차라리 작곡된 곡을 충실하게 재현(연주)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다. 즉흥연주는 정말로 매우 잘하는 연주자와 하지 않으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틀 자체가 없는 완전한 자유즉흥(free improvisation) 음악이 그나마 재미있다. 물론 완전한 프리뮤직도 연주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는 틀에 박힌 듯 재미없는 경우도 많다. 나는 합주로 프리뮤직을 연주할 때 나의 밴드 멤버들과 연주하는 것만을 좋아한다. 그들과 합주할 때만 무궁무진한 재미와 기쁨이 있다.
어느 날, 자주 가던 라이브 카페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내 밴드의 멤버가 잘 모르는 다른 사람과 즉흥합주를 하려고 한다. 함께 하자고 나를 불렀다. 같이 하고 싶지 않았지만 멤버가 계속 부탁해서 할 수 없이 드럼 세트에 앉았다.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것이, 이 사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나이를 따지는 습성이 배어 있다. 그 모르는 사람이 연배가 있어 보여 일단 그의 연주를 따라가며 맞춰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참을 맞춰주며 연주를 하는데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 코드, 리듬, 선율 구조의 틀에 맞춘 전형적인 즉흥연주였다. 예의는 충분히 차린 것 같아서 중간에 몇 번 리듬을 살짝 깨는 '공격'을 해보았으나 나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따라오지 못한다. 합주가 이상해지기 시작해서 다시 그에게 맞췄다. 연주 테크닉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봐서 전문 연주자는 아닌 것 같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연주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잘 모르겠다. 함께 합주하면서 받은 인상은 음악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긴다기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다.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다른 방향으로 가보자는 의도를 내비쳤으나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뭐 처음 함께 연주하는 것이라 그럴 수도 있다.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마무리 리듬으로 이끈 다음 즉흥 합주를 끝냈다. 합주를 마치면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라 그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나를 외면하고 묵묵히 악기를 정리한 다음 자신 앉아 있던 테이블로 들어갔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인 것 같다.
내가 맥주를 마시던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함께 온 지인들이 그가 땀에 푹 절은 것에 비해 나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며 웃는다. 어쨌건 나름 충분히 배려하고 예의를 차린 것 같다. 하지만 꽤 재미없었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와 다시는 즉흥합주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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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그의 흔적’을 찾게 된 과정을 쓰고 나서 다시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나오는 이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내가 이 인간과 똑같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착하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평범하고 착한 악인’이 아니다. 나는 악인도 되지 못하는 그저 비뚤어진 인간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