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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Jan 18. 2024

용암 같은

신호대기 중 잠깐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잔뜩 끼어 있는 잿빛 먹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노란빛이 보였다. 밤새 비를 다 쏟아낸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구름 사이의 노란빛이 조금이라도 붉었더라면 영락없는 용암 모양이다. 하늘을 가득 뒤덮은 용암을 상상하자 뒷덜미가 살짝 싸늘해졌다. 


맨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건너편에 차들이 하나도 없다. 좀 과장하면 거의 100여 미터 정도 앞의 도로가 텅 비어있다. 50여 미터 앞에 한 차선 너비 반 정도 크기의 시커먼 물체가 보였다. 담요나 옷가지 같았다. 누군가 지나가다 떨어뜨린 모양이다. 


도로 옆 전신줄에 앉아 있던 검은 새 대여섯 마리가 그 물체 위에 모여들었다. 멀어서 잘 안 보였지만 비둘기는 아니었다. 몸집이 커서 까마귀나 까치 같았다. 피해 가야 되나. 


초록불이 켜지고 액셀을 밟았다. 검은 새와 시커먼 물체에 가까워졌다. 새들은 그 물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차들이 가까워지자 검은 새들은 원래 있던 전신줄로 날아갔다. 아마 신호대기 시간이 되면 다시 내려올 것이다. 시커먼 물체 위 곳곳에 흩어진 시뻘건 속살이 보였다. 용암 같았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의 사체였다. 작은 개 아니면 큰 고양이일 것 같다. 


용암 같은 하늘 밑에서 용암 같은 사체를 뜯어먹는 시커먼 새들을 도시 한가운데서 보게 될 줄이야. 문득 멸망의 징조처럼 느껴져 섬뜩하면서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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