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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Jan 20. 2024

유행가

신기할 정도로 아무도 없는, 사람도, 자동차도, 길고양이도, 새들도 안 보이는, 이른 아침의 주택가 골목길이었다. 영상 3도 정도 되는 조금은 쌀쌀한 날이었지만 사방이 고요해서 주변 공간 전체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런 게 바로 평화인가 보다.


갑자기 저 멀리 앞, 오른쪽 골목에서 7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나왔다. 그는 한 손에 쥘 수 있는 네모난 물체를 꺼냈고, 바로 트로트가 들리기 시작했다. 요즘 트로트가 아니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들을 수 있는 ‘정통’ 트로트였다. 아마도 그 작은 물체가 낼 수 있는 최대 음량으로 올린 것 같다. 골목길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트로트는 순식간에 주변 공간 모두를 ‘점령’했다. 꼼짝없이 그 노인이 만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노인은 주변을 쳐다보고 팔운동을 하면서 걸어간다.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이 생각났다. 


여관방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대부분 밖에 나갔고 몇 명이 방에 남았다. 한 아이가 카세트 데크를 가져와서 (링크한 그림 같은)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틀었는데 소리가 너무 컸다. 그 아이가 틀은 팝송이 듣기 싫어 밖에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방 안에서 실컷 들으라지. 그런데 그 아이가 포터블 카세트를 창틀에 올렸다. 스피커의 방향은 방 안이 아니라 창 바깥이었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노래를 틀면서 창밖에 있는 다른 아이들의 반응을 구경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문 앞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_

한 20년쯤 지나고 나면, 동네 골목길에서 그때 유행했던 팝송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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