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타 Jan 23. 2024

얼굴값

꿈에.


나는 너무 심한 미남이었다. 이 말 그대로다. 적당히 잘 생긴 정도가 아니라 ‘너무 심한’ 미남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익숙한 반응이었지만 그 ‘규모’가 달랐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 참. 나는 미남이지. 너무 심한.


여성들은 모두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했다. 친절함의 정도와 눈길에 담긴 끈끈함의 수준으로 이성애자 여성과 아닌 여성을 쉽게 분간할 수 있었다. 남성들도 대부분 호의적이었지만 간혹 몇 남성은 뚜렷한 적의를 보였다.


하지만 남들 앞에 나서기 싫은 성격 때문에 사람들의 그런 반응이 불편했다. 게다가 심한 ‘미남세‘가 부과되어 삶은 팍팍했다. 상위 0.1%의 미남으로 분류된 나는 수입의 40%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월세와 과태료는 2배이고, 곳곳에 설치된 AI 얼굴 인식 카메라로 편의점에서 담배 하나를 살 때도 1.5배 돈을 더 내야 했다.


생활은 점점 쪼들려갔다. 집안이 부자도 아니고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격 때문에 모델이나 영화배우를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나가던 대학 강의는 외모 때문에 벌써 다 잘렸다. 위화감을 조성하고 학생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맞는 말이었다. 미남세가 만들어진 근거는 다음과 같다. 


생물학자 마이케 슈토베르크의 연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암수로 나뉜 생물체는 수컷의 20%가 암컷의 80%를 얻는다고 한다. ‘자연적인 설계’인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인셀 Incel(비자발적 독신자) 커뮤니티의 여성혐오 논리도 이와 비슷하다. 상위 20%의 매력적인 이성애자 남성이 모든 여성의 80%를 성적으로 차지하고 나머지 80%의 남성은 아무 기회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미남세로 이 거대한 불평등을 보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혹했다. 나는 미남인 것 외에는 별 능력이 없는 데다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미남이라는 특성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많은 여성을 독점한 적도 없다. 물론 여자친구가 없던 적은 없었지만 워낙 사람들을 만나질 않으니 동시에 여러 여자를 만나지는 않았다. 만나는 여자친구도 나와 비슷한 성향이었다. 부자인 여자들은 나와 맞지 않았다. 아무리 너무 심한 미남이어도 집세를 6개월 이상 밀리면 소용없었다. 오히려 얼굴값도 못한다는 욕을 들어야 했다. 이 세상은 호시 신이치의 소설집 <완벽한 미인>에 나오는 디스토피아 같았다.


 _

괴로워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어제 봤던 책과 영화 때문인 것 같다. 묘한 꿈이었다. ‘악몽’이었지만 달콤했다. 집주인에게 욕을 먹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은 건 너무 좋았다. 꿈을 계속 이어서 꾸고 싶어서 다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다행히 꿈은 이어졌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작은 가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