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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Jan 31. 2024

읽은 기억도 없는 책

<읽은 기억도 없는 책>

<읽었다는 기억만 있는 책>

<재미있게 혹은 지루하게 읽었다는 감정만 기억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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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어떤 책이 내게 감명을 주고, 인상에 남아 마음 깊이 아로새겨지고, 송두리째 뒤흔들어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거나>,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바꾸어 놓았는가>.


짧은 에세이 <문학의 건망증>에서 화자(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서가로 가서 아무 책이나 끄집어내어 읽는다. 곧 아주 좋은 책을 집었다고 깨닫는다. 완벽한 문장, 명확한 사고의 흐름, 결코 알지 못했던 흥미 있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놀란다. 자신이 감탄한 부분에 밑줄이 쳐 있고 ‘아주 훌륭하다’는 메모도 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누군가도 자신과 생각이 똑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메모의 필체가 익숙하다. 자신의 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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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내용이 오랜 시간이 지나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면, 과연 그 책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아니면 무의식 깊숙이 남아 작게나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쥐스킨트는 에세이에서 이 문제를 고민한다. 물론 정답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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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지루하게 읽었다는 감정만 기억나는 책>이 뭐가 있었더라. 하나가 툭 떠오른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이 예전에 청소년 추천도서였다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책이 쓰인 시대 상황에 맞는 상징, 비유, 은유가 너무 많아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의도가 흐릿한 산문시집으로만 보일 텐데. 


다행히(불행히) 읽은 책이 많지 않아서 <읽은 기억도 없는 책>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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