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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Feb 26. 2024

단편.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이걸 왜 하는 거죠?”


평가 위원 한 명이 근본적이며 날카롭고 똑똑한 질문이라는 뉘앙스를 담아 이렇게 첫마디를 툭 던졌다. 그리고 미리 받은 서류를 꼼꼼하게 읽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엉뚱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전히 있네. 이런 새끼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공공기관 사업 심사 자리에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결심(까지)했었는데. 결국 이런 인간을 또 만나는구나. 이건 무슨 자연법칙 같은 것일까. 한 10년 정도 이런 심사 자리에 완전히 발을 끊었었다. 석 달 전, 예전에 도움을 많이 받은 분에게 받은 심사 요청은 거절하기 힘들어 나갔던 적이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의외로 이상한 심사 위원이 한 명도 없었다. 아. 이제는 이런 분위기가 좀 바뀌었나 보다. 다시 이런 자리에 나가도 될 것 같다.


주로 나이가 많은 남자 교수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심사나 평가와는 별 관계없는 말들.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자랑하는 말들. 자기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눈치 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하는 말들. 자기 특권을 과시하는 말들. 그런 말들. 그런데 이 자는 나이도 젊고 남자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다. 


“우리 모두 심사할 서류를 미리 받았습니다. 이 자리는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업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 심사를 거절하고 이 자리에 나오지 말았어야죠. 게다가 미리 받은 서류조차 제대로 읽지 않았네요.”


안타깝게도, 이 말 역시 속으로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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