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모비 딕’을 다 읽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청소년용 해양모험소설 ‘백경’은 전혀 다른 책이었다.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마침내’로 글을 시작한 이유) 일단 양이 많다. 난데없이 희곡 형식으로 바뀌다가, 고래와 포경업계에 관한 ‘박물관식’ 지식이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구약성경이나 고대 그리스 문헌에 나오는 낯선 용어들은 주석을 보지 않으면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래의 흰색> 같은 챕터는 ‘박물관식’ 지식으로 꽉 차 있었음에도 꽤 재미있었다. 동서고금에 등장하는 흰색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 특유의 섬세한 흰색 묘사는 ‘지식’으로도, ‘문학’으로도 좋았다. 적어도 이 챕터는 앞으로 여러 번 다시 찾아 읽을 것 같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시각적인 묘사가 훌륭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여러 상황들이 나중 장면들과 연결되는 단서들이 되었다.
대체 모비 딕은 언제 나오는 거야. 모비 딕과의 혈투를 기대하며 계속 책장을 넘기지만, 그 과정이 좀 길어서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정말 영화처럼, 모비 딕을 만난 다른 포경선들을 만나는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모비 딕과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주는 부분부터 소설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된다.
마침내. (또 이 단어를 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모비 딕과 대결하는 장면을 만난다. 엄청나다. 요즘 영화 제작 기술과 연출로도 이 ‘혈투’를 묘사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그레고리 펙이 에이허브 선장으로 나오는 고전 영화를 찾아보았다. 예상보다는 좋았지만 역시 소설보다는 못하다.
모비 딕과의 혈투까지 가기 위한 기나긴 과정에 비해 에필로그는 무척 짧았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짧아서 여운이 오래 남았다. 완벽한 결말이었다.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모비 딕’을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자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 ‘위대한’ 소설로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그는 ‘모비 딕’이 단순히 문학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이 들어있는 스케일이 다른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모비 딕’을 읽으면서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무거운 문체 스타일이 비슷하다.
결말도 좋았지만, 노예제가 여전히 남아 있고 인종 차별이 심한 시대였음에도 주인공 이스마엘이 식인종 야만인(소설 속 표현) 퀴퀘그와 우정을 나누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미국문학의 걸작으로 함께 거론되는 ‘위대한 개츠비’보다 훨씬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