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곳에는 두 명이 다소곳이 양손을 앞에 모으고 서 있다. 그들 바로 옆에 ‘무료 성경공부’라고 쓰인 배너와 홍보 전단이 진열되어 있다. 그들이 살짝 비켜서 있는 길은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도 탈 수 없는 보행 전용 산책길이라 운동하는 사람들 외에는 대부분 천천히 걸어간다. 태풍이나 폭설만 아니라면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근처 아파트 상가 건물에 그들의 본부가 있다. 창문에 ‘왕국’이라는 글자가 지나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크게 붙어 있다. 왕국. 왕이 다스리는 나라. 그들은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서 있다. 길가의 나무나 가로등처럼 거의 움직임이 없다. 표정도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중 한 명이 눈에 띄는 미소를 짓고 있다. 아니. ‘미소微笑’라고 하기에는 작지 않다. 그 미소는 그가 짓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의 얼굴 위에 그린 그림 같다. 그 미소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배트맨>에 나온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의 미소처럼 큼지막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미소는, 멈춰 있다.
그는 단정한 헤어 스타일, 단정한 옷, 단정한 신발에 ‘조커’의 미소를 짓고 단정히 서 있다. 그의 얼굴과 몸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있지만 그의 눈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사람들 뒤 저 너머 먼 곳을 향해 있다. 그는 아마도, 분명 이곳에는 없는, ‘왕국’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