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2011). 린 램지 감독.
갓난아기 케빈은 하루 종일 울어댄다. 엄마 에바는 아기가 자신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이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에바는 전형적인 산후 우울증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아기는 뭔가 다른 것만 같다.
어느 날, 에바는 유모차를 끌고 나간다. 아기는 여전히 발악하듯 울어댄다. 에바는 드릴로 바닥을 뚫고 있는 시끄러운 공사장 한복판에 멈춰 선다. 거대한 드릴 소음에 가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잠시나마 에바는 해방감을 느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감되는) 장면이었다. 나 역시 인간의 말소리(목소리) 보다 공사 소음이 더 친근하고 무해하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
케빈을 연기한 에즈라 밀러는 이 캐릭터를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와 케빈은 좀 다른 것 같다. 케빈은 괴로워하는 상대의 감정을 분명히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에리히 프롬은 가학증을 이렇게 설명한다.
가학적 경향은 남을 괴롭히고 싶어 하거나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이 고통은 육체적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고통인 경우가 더 많다. 그 목적은 남을 적극적으로 해치는 것, 남에게 굴욕감을 주고 난처하게 만드는 것, 또는 남들이 난처하고 굴욕적인 상황에 놓인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학적인 사람은 그 대상에게 의존한다. 가학적인 사람은 지배할 대상이 필요하고, 자기가 강하다는 느낌은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지배할 대상을 몹시 필요로 한다. 독재자들 대부분이 이런 성향이라고 한다.
영화 속 캐릭터 케빈은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그저 가학적 경향이 강한 ‘못된’ 인간일 수 있다. 아마도 에즈라 밀러의 의도는 ‘사이코패스’가 일종의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유전적 질병’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