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웃어도 행복해지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웃음’
1.
어둠이 채 걷히지 않아 아직은 어둑한 이른 아침이다. 주택가 골목길에 인접한 도로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 횡단보도에만 세 명이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다. 30대 초반의 남녀 두 명은 8월의 아침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꼭 붙어있고. 중년 여성 한 명은 그들에게서 더위라도 묻을까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다.
느닷없이 30대 초반 여성이 꼭 붙어있던 자신의 남자를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 여성의 남자는 살짝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떨어져 서 있던 중년 여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웃음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 웃음은 주변 공간을 정복했다. 반려견의 마킹처럼 뿌려진 그 웃음은 이곳에서 이 남자는 내 것이라는 (혹은 그 반대의) ‘영역’ 표시이자 이 남자에게 순응하고 있다는 복종의 표식이었다.
2.
대학교 안 카페는 로비 한쪽을 개조해서 만들어져 천장이 높고 널찍하다. 대학생들 수십 여 명과 교강사로 보이는 사람들 몇 명이 군데군데 앉아 있다. 대부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카페 안은 조용했다.
갑자기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카페를 뒤덮었다. 한 테이블에 학생 다섯 명이 앉아 있었고, 그중 한 여학생이 다른 학생들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그 말에 동조를 표시하기 위해 온몸을 들썩거리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웃음을 쥐어짜 내고 있었다. 다른 네 명의 학생은 그 여학생이 최선을 다해 웃을 때마다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여학생은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웃었다.
3.
오후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이었다. 한껏 잘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휴대폰으로 ‘집사님’과 통화를 하며 서있다. “아유~ 네. 네. 그럼요. 오호하하하핫” 말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집사님이 바로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연신 고개를 숙이며 크게 웃었다. 골목길에는 중년 여성의 웃음소리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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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타인을 자발적으로 긍정하지 못하고 고립의 두려움으로 나를 다른 사람의 시선과 권력(권위)에 수동적으로 용해시켜 개인을 잃어버리는” - 에리히 프롬
해석 노동 interpretive labor 혹은 눈치 노동.
사회생활에서 일상적인 업무의 상당 부분은 타인의 동기와 인식을 해석하려는 ‘노동’으로 소모된다. 피고용자가 고용자에게, 노예가 주인에게,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낮은 계급 사람이 높은 계급 사람에게 하게 되는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