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권력 4.

by 윤타


20년 전은 애연가들의 세상이었다. 길거리, 공공장소, 카페, 식당 등 금연 표지판만 없다면 웬만한 장소는 흡연이 가능했다. 요즘은 그 반대로 흡연 표지가 있는 곳에서만 흡연이 가능하다.

머리가 허리까지 길어서 간혹 여자로 오인받던 시절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신촌의 술집 골목을 걸었다. 앞에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둘이 걸어오면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 옆을 스쳐 지나면서 "무슨 여자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라고 말했다.

지금은 남자나 여자나 길거리를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면 욕을 먹는다. 물론 여전히 그런 남자들은 요즘도 많지만 여자는 보기 힘들다.

그 둘은 여자였지만 남자의 관점을 갖고 있었다. 남자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 자유가 있지만 여자에게는 그런 자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둘은 '주체적'으로 '객체'가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건네는 힐난의 말과 경멸의 눈초리는, 불편한 것을 넘어 자유가 억압되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요즘도 여성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길거리에서 남자들의 그런 시선(억압)을 받는다.

남자들은 길거리에서도 주체이고 여자는 객체가 된다. 남자는 길거리에서도 자유롭게 행동할 권력을 가졌지만 여자에게는 그런 권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문제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문제다. 그리고 권력이 없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순응하는 것에 관한 문제다.

물론 그 20대의 젊은 여자 둘은 자신들이 권력이 없는 존재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둘은 여자였지만 남자의 관점을 가졌다. 남자의 관점이란 이 사회의 관점이다. 그 둘은 이 사회의 관점에 순응하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회의 보편적 관점이란 것은 결국 여자를 객체로 생각하는 남자들의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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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없는 자가, 권력이 있는 자를 찬미하고 복종하며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도 권력을 가진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아이가 대항(혹은 저항) 의식을 통해 아버지가 우월하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순순히 아버지의 우월성을 찬탄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그저 아버지를(권력을) 찬미하고 복종하며 그 품에서 자신을 객체화한다. 자신의 주체를 포기하게 된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인정받았다고 느낀다. 아버지의 관점과 시각을 그대로 추종하고, 그것이 원래 자기 것이라고 믿는 순간 스스로 만족하며 충족감을 느낀다.

이것이 일부 사람들이 권위적인 권력을 숭배하는 이유다. 권위를 숭배하고 복종함으로써(본인은 주체적인 판단이라고 믿지만) 자신이 그 권력과 함께 하는 것 같은, 자신도 권력자라는 환상과 충일감을 느낀다.(박사모가 이런 것이 아닐까)

페미니즘은 모든 것에 보편적인 입장을 취하는 합리적인 정신이다.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자유의 가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개인적 행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의 불편부당한 권력을 알아채고 그것을 비판하고 바로잡는 정신이다.

페미니즘을 굳이 휴머니즘이나 이퀄리즘으로 바꿔 부르자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보조적인 설명이라면 모를까) 변화가 필요한 구체적인 대상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차별받는 흑인의 인권운동을 휴머니즘이나 이퀄리즘으로 부를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소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될 때, 권력에 의한 차별을 옹호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별은 권력이 많은 자가 권력이 적은 자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이다.

인종과 성별이 다르다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히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실은 자신은 인종과 성별을 차별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옹호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채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며,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오면서 이 사회의 습속에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혹은 그런 억압이 자신과 관계없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도 권력자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억압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위협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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