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인품

by 윤타

"당신은 시를 쓰죠. 당신 나름대로 뻔뻔스럽게도 가난과, 압박과, 악행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아요. 우리들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변형시켜 놓고 나서 다 잊어버리죠. 인간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그까짓 아름다움이 뭐예요."

-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535쪽.


다행히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못된’ 예술가는 당대에 잠시 반짝할 수는 있어도, 시대를 초월하는 훌륭한 작업(작품)을 남기지 못한다.


주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피해를 입힌다는 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예술의 가장 기본은 공감이다. 머리가 좋은 작가는 공감을 연기(연출)할 수 있다. 마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이 사회 안에 녹아들기 위해 공감능력을 연기하는 것처럼.


‘연기력’이 아주 좋다면 그 당대에 인정을 받는 작업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한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작가가 공감이 가장 중요한 예술분야에서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평판이 나쁜 회사의 제품이 아무리 훌륭하고 저렴해도 그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처럼, 그 예술작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예술작품을 만든 예술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 예술작품을 거부할 자유가 있다.


예술보다는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있고, 작가의 개인적 인품보다는 예술작품의 가치를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둘 다 틀린 의견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중에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다.


나는 전자에 가깝다. 그 예술작품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작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인격자라면 그 작품을 멀리하게 된다. 인품과 작업 모두 훌륭한 경우도 많은데, 굳이 그런 작업을 감상(소비)하는 것은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진다.


특히나 사람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라면, 이 사회의 부당함을 가리는 예술이라면, 그것은 예술은커녕 악이자 범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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