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적이고 착한' 악인

by 윤타

베르코르의 소설 ‘바다의 침묵(Le Silence de la mer)’ (1942)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한다. 독일군의 한 장교가 노인과 그의 조카딸이 사는 집에 기숙한다. 독일군 장교는 지성적이고 신사적인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노인과 조카딸은 그 장교에게 철저히 ‘침묵’한다.


작가의 의도는 ‘resistance(저항문학)’이었지만, 출간 당시 독일 장교를 지나치게 훌륭한 지성인으로 묘사한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고 한다. 글을 읽는 독자의 성향이나 독자의 상황(삶)에 따라 충분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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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히 ‘나쁜’ 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많은 인간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 시스템에 순응하고 추종한다. 심지어 지성적이고 ‘착한’ 사람조차 그렇다. 그 ‘지성적이고 착한’ 사람은 ‘나쁜’ 인간보다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친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끼친 해악을 눈치채지 못한다.


사회 고위층 인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도덕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일반 민중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다. 그럼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 사회 시스템을, 고위층과 하위층이라는 계층의 분리와 그 존재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한 이는 ‘착한’ 사람이 맞을 것이다.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힘든 젊은이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따뜻한 위로를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로는 이 사회체제를 굳건히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랫’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악당 고위층보다 이런 ‘착한’ 기득권층이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친다.


나치 독일 군복을 입은 그 ‘지성적이고 착한’ 독일군 장교 개인은 분명히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착함이 ‘나치’라는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의 ‘악’을 가리고 정당성을 부여한다.


나는 여전히, 학생들을 위한다고 진심으로 믿었던, 강한 신념을 가졌던 그들, 교수, 처장, 교직원들의 ‘착한’ 말투와 표정을 기억한다. 그들 개개인은 분명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로 베르코르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성적이고 착한’ 독일군 장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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