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생산’에서 진품성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그 효력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예술의 모든 사회적 기능 또한 변혁을 겪게 된다. 제의祭儀에 바탕을 두었었던 예술은 이제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113쪽.
벤야민이 말한 ‘정치’가 넓은 의미로 쓰였다고 해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정치’도 당연히 포함된다. 현대의 모든 예술은 당연히 정치적이다. 예술과 관련해서 가장 정치적인 말은 (그 유명한) ‘예술은 정치적이면 안 된다’이다.
반면, 복제가 너무나 쉬워진 음악은 (이제는 복제도 아닌 스트리밍으로 소비하게 된 음악은) 다시
제의祭儀가치가 중요해졌다.
음악의 ‘진품성’은 녹음되어 가공된 디지털 음원이 아니라 ‘공연’에서 나온다. 공연장은 제의祭儀를 치르는 공간이다. 특정 공간에서 펼쳐지는 의식은 그 일부를 기록할 수는 있지만 그 느낌(경험)은 복제되지 않는다.
음악의 진품성을 느끼려면(즐기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에 가야 한다.
_덧.
공간의 아우라마저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는 뇌신경 과학이 발달하면 공연조차 복제가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