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같은 영화

by 윤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은 재미없었던 영화로 기억한다. 그리고 같은 작업실을 쓰던 선배가 이 영화의 국내용 포스터를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또렷이 기억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단지 좀 재미없는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시 봤을 때는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희생>을 봤던 시절에는 ‘겉멋’으로라도 난해한 예술영화를 가끔 보러 다녔다. 요즘에는 마블 영화 같은 SF 블록버스터를 즐겨 본다. 그래서인지 <희생> 같은 영화를 즐겼던 뇌 근육이 완전히 퇴화해버렸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는 친절한 서사구조에 익숙해져 버렸다. 물론 <희생>에도 당연히 서사(이야기)가 있음에도, 요즘 영화에 물든 뇌는 <희생>의 서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버거워한다.


영화 <희생>은 ‘산문’이 아니라 ‘시’에 가깝다.


발레리는 산문을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걷기’로, 시는 그 자체가 목적인 ‘춤’으로 비유했다.


산문이 지식이나 관념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 글(단어와 문장)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걷기)이다. 시는 그 자체가 감성이며 관념이고 목적이다. 시에 쓰인 언어는 그 관념 자체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춤’이다.


처음 <희생>을 봤던 시절에는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시’처럼 감상할 줄 알았기에, 비록 지루하고 재미는 없었지만 적어도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뇌가 더 굳어버리기 전에 이런 ‘종류’의 영화도 찾아봐야겠다. 치매 예방에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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