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포트킨은 아나키스트다. 그는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책을 썼다. 그는 과학자(생물학자)로서 아무 이유 없이 서로 돕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본능’이라는 ‘상호부조론’을 주장했다. 이 책들 이외에도 그의 글에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온화한 성품이 드러난다.
‘온화한’ 크로포트킨이 분노하는 대상은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라는 시스템이다. 그는 그 ‘시스템’이 사람의, 생명체의 서로 돕는 ‘본능’을 억압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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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은 자유에 관한 밀의 정의를 비판한다.
밀은 ‘자유’를 “모든 타인들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한다.
‘권리’라는 단어는(개념은), ‘국가’라는 개념을, ‘국가의 모든 권리’를 정당화하고 인정한다. (국내에 나온 책들에서는 ‘권리’라는 개념이 잘 드러나지 않게 번역된 것 같다.) 크로포트킨은 ‘국가라는 체제 아래에서의 자유’라는 개념을 비판한다.
크로포트킨은 자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유는, 사회적 형벌의 두려움을, 신체적 혹은 기아의 공포에서 비롯된 형벌 혹은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자기 행위의 판단에 개입시키지 않고 행동할 가능성이다.”
자신 개인이 하고 싶은(즐거운) 일을 하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지루할 거야.”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그 일을 멈추고 가족에게 가는 것과, “일하러 가지 않으면 내 자리를 잃어버릴 거야.”라고 생각하며 일터로 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두 번째 판단에는 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여기에 자유 상태와 비자유 상태 사이의 모든 차이가 있다. “벌을 피하기 위해 특정한 만족을 거부한다.”라고 말해야 하는 인간은 부자유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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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집회’가 있고 ‘자유롭지 못한 집회’가 있다. ‘자유’라는 단어를 숭배하는 이들이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현실은 꽤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