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라는 게임에서만 그럴까?
위에 달아 놓은 제목은, 얼마 전 우연하게 유튜브를 보다가 토트넘 다큐멘터리에서 무리뉴 감독이 라커룸에서 맨시티와의 하프타임에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다가 눈에 걸린 내용이다.
사실 엄청나게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지금까지 그 오랜 시간을 너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원칙과 룰에 벗어나는 삶을 살면 안 된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 가족과 친척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등등수 많은 바른생활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서 최대한 착하게 살아온 나로서는 참으로 황당하고 화나고 진정으로 열불이 나는 이야기 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쩌면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다른 분들도 지금까지 착하게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려고 매일마다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무리뉴 감독이 한 말이 진실인 것을 그리고 실제로 현실에서 잘 통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나쁜 놈들이 착한 사람들을 부려먹고 약취하기 위해서 이런 기준과 교육을 시켜왔던 건 아닐까?라는 황당한 의심마저 든다.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이 착하고 바르고 건전하고 법을 잘 지키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 일지 모른다는 참으로 순진하고 한심한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착취하는 계급을 위한 프레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허무한 생각마저 든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너무 막 나간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세상은 착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yRGFYNOIacM
이 비디오 클립에서 호세 무리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때는 맨시티전에서 0:0으로 전반을 마친 상황이다.
" 지금 잘하고 있어, 상대랑 잘 싸우고 있고 경기 결과도 우리에게 기울 수 있어. 근데 잘 들어봐. 우리가 PK 막았을 때 상대는 또 PK 얻으려고 심판한테 엄청난 압박을 했어. 이게 바로 나쁜 놈들과 착한 놈들과의 차이점이야. 근데 그거 알아? 착한 놈들은 절대로 이기지 못해. 그러니까 더 강하게 밀고 나가라고. 상대는 토비가 옐로카드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을 거야. 무조건이야. 약속할게. 너네도 이것만 알아둬. 카일워커, 진첸코, 스털링이 옐로카드가 있다. 뭔 말인지 알지? 착한 놈처럼 하지 말고 나쁘게 하라고!"
그런 라커룸 대화 이후에 토트넘은 후반전 초반에 진첸코에게 파울을 얻어내서 퇴장시킨다. 그리고 10명으로 수적 열세에 빠진 맨시티는 고전하다 결국 스티븐 베르흐베인과 손흥민의 골로 2:0으로 패배한다.
인도 속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속이는 놈보다 속는 놈이 더 나쁘다는 속담이다. 영어속담에는 한번 속으면 속인사람이 나쁜 놈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인도가 미국보다 훨씬 치열하고 각박한 삶을 사는 곳이었다는 추측을 할 때, 미국에서는 그래도 한 번은 사람을 믿어줄 여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이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도에서는 나 말고 다른 놈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니 그들이 나를 속이고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의심으로 남을 대하라는 것을 그 옛날부터 당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관습과 원칙에 따라 남을 배려하며 착하게 살아야 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그 안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슬쩍 듣게 되면 너무나 좋은 말 같지만 거꾸로 놓고 생각해 보면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이야기하는 다르마(Dharma)의 개념과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다르마란 우주질서, 의무, 각 개인 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삶의 역할에 대한 정의이며 모든 인간은 각자 다른 위치와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이 카스트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 1500년 경, 인도에 아리아인들이 침입하여 높은 계급(브라만, 크샤트리아계급)의 위치를 차지하며 기존원주민(드라비다인)에게 낮은 계급(수드라, 불가촉천민)을 부여한 후 그 아리아인의 지배와 통치를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만들어져 사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나는 왜 이렇게 하층민으로 살게 되었는가?라는 하층계급의 불만과 한탄 섞인 질문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너는 네가 태어난 그곳에서 하층민에게 적합한 역할을 하게 우주의 진리가 준비되어 있다"라고 프레임을 교묘하게 만들어 그들의 계급상승 의지를 봉쇄하고 순응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도록 통제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심지어 그러한 사상에 따른 카스트에 따른 의무와 권리를 마누법전을 통해 확립하였다.
오늘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착한 놈이 이기기 힘들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착해지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하지만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얽매여서 모든 일을 할 때 내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은 더 더욱이나 옳지 않다.
하지만,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보기 위해, 내 사랑하는 아들들과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려 이 글을 적어 본다.
예를 들어 관공서에 가서 이야기를 하거나 은행에 가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정보적인 비대칭 약자의 입장이다. 보통은 그들이 안된다고 하면 그냥 안 되는 줄 안다. 하지만 당신은 아는가? 힘센 놈들이 오면 그들은 우리에게는 안된다고 했던걸 그냥 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걸.
여기 생각해 볼만한 케이스가 있다. 어느 착한 예금자가 정기예금을 가입하는데 3년 장기예금을 하면 분명히 추가 2%의 특별 이자를 더해서 5%의 정기예금 이자를 준다고 구두로 이야기를 해서 3년간 예금을 하고 만기가 되어 예금을 찾으러 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 가입을 권유했던 직원은 이미 다른 지점으로 이동을 했고, 처음 보는 직원은 "아니 그럴 리가 없다고 분명히 3%라고 이야기를 했을 거다"라고 하면서 " 지금은 그나마도 2%밖에 안되니, 그만하면 잘 받은 이자 아니냐고? 어머님이 잘 못 들으셨을 거예요!"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보자.
자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받은 건 그때 당시의 담당자와의 이야기뿐이고 증서를 받은 것은 없다는 나에게는 좀 큰 문제가 있다.
보통, 이럴 때 우리는 "아!!! 그래요? 제가 잘 못했네요.. 정확하게 파악했어야 하는데... ":라고 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나오는 경우가 99% 다. 그러면 담당직원은 " 아 네네 다음에는 확인을 잘하셔야 하겠어요! "라고 응대를 할 것이다.
그러면 누가 좋은가? 나는 안 좋고 은행은 좋은 일일 거다. 왜 그래야 하나? 일방적인 측면에서 내가 왜 그들이 된다고 하면 되고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을 지켜야 하는지가 의심스럽지 않나? 나는 분명히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고 그 말을 믿었고 3년이나 유지를 했는데 말이다.
물론, 법으로 그렇게 하게 되어 있는 법과 규칙을 모두 어기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법과 규칙마저 지키지 않으면 정말 무법천지가 될 테니까 말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법테두리 안에서, 규칙의 범위 안에서의 자유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법에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정해져 있으면 하면 안 된다. 규칙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되어 있으면 그 역시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도 않은데 남을 위해서 나를 당연하게 희생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시대와 상황에 절대로 맞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서, 만약 거기에서 내가 법에서 정한 업무방해의 범위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시위를 하거나 상담을 하거나 SNS에 올리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내 권리를 주장했다면, 내가 장담하건대 나는 1%의 이자를 받아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1%라고 해봤자 3천만 원을 예금했다면 30만 원 아닌가... 그 정도는 은행장이 직권으로도 줄 수 있는 금액일 거다.) 실제로 그 돈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뛰어난 천재들이 많이 나오고 그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의 유수의 IT기업의 CEO들이 그런 분들이 많지 않나? 아무튼 이렇게 유학을 간 인도학생들에게 다른 나라에서 유학온 친구들이 그들의 행태를 보며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인도 학생들은 가정형편이 넉넉한 경우가 별로 없었기에, 있는 장학금만을 위해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장학금을 만들거나 교수님이나 학교의 다른 커뮤니티를 통해 독창적인 방법으로 학업을 위한 돈을 마련하는 대단한 수완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를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또 앞서 이야기를 했던 인도의 속담이 생각난다. 왜 그들은 그리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살았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말이다. 아마도 그들의 삶이 이리도 어렵고 척박하고 열악했어도 끝끝내 살아남아서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았던 이유는 착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수십 가지를 들어도 부족함이 없다.
착하다와 친절하다를 혼동하지 말자, 친절한 것은 착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친절한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반면 착한 것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느낌이 든다.
비즈니스의 환경은 전쟁과 비유가 된다. 사업에서 사업전략을 세우고 Target을 설정하고 공략하고 성과를 모니터링하고 가격과 판촉 그리고 브랜딩을 가지고 경쟁사와 전쟁을 한다. 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상대방에게 착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아플까 봐 배려할 수 있나? 상대방이 어려울 테니 시간을 줄 수 있나? 그게 가능한가?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는 그런 상상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즈니스도 전쟁이라고 한다면? 똑같다.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똑같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사실 지켜야 하는 원칙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면 절대로 없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나를 배려해 줄까? 배려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상대방에게 우습게 무시하며 쉽고, 착해빠진 멍청한 경쟁자로 급속도로 망해갈 수 있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이제 착한 사람말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나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나에게 하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거리감이 있는 남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 세상에는 심지어 자기가 나쁜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착해지려고 애쓰지 말라. 그들은 당신에게 착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많으니까.
잊지말자.
세상은 한 번도, 착했던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