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두아, 가짜의 철학적 가치

가짜라는 것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by 야갤이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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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디 두아' [사진=넷플릭스]


구정 연휴에 와이프와 함께 저녁을 먹고, 아무런 생각없이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레이디 두아... 전형적인 사기꾼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 이 드라마는 어제 저녁에 제게 새로운 궁금증이 생기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어쩌면, 전형적인 사기꾼의 이야기 일 지도 모르는데(아직 앞 몇편 밖에 보지는 않았습니다.)

드라마속 주인공인 사라킴의 드라마 속 대사인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제가 갖고 있던 가짜에 대한 생각을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 맞다... 진짜라는 것과 가짜라는 것은 어떤 철학적인, 실체적인, 차이가 있는 거지? 라는 좀 황당한 것 같은 질문이기는 하지만 앞으로의 제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호기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늘 같은 부분에 대한 현실적인 업무상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소비재 마케팅과 브랜딩 일을하면서, 만약 어떤 동일한 면티셔츠에 브랜드 로고가 샤넬이 찍혀있는 경우와 나이키가 찍혀있는 경우 그리고 나이스가 찍혀있는 경우와 아무것도 없는 경우에 각각 브랜드의 가격차이는 왜 발생할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오랜기간 책임자로 일을 해 왔습니다. 결국 실체는 전혀 차이없는 완전히 똑같은 면티셔츠 인데 말이죠...


만약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님께서 이런 브랜드들의 제품을 구매하셔야 한다면, 각 브랜드의 판매 가격은 얼마정도로 매장에서 팔릴까요? 기준점을 아무것도 없는 면티셔츠 판매가격을 1만원으로 한다면 말이죠.

것도 재미 있는 상상 일텐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제 글을 읽으시는 분이 생각하시는 샤넬과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는 어느정도 일지.. 제가 상상해서 설정한 가격은 이 글 맨 아래에 재미삼아 넣어 두겠습니다(물론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저는 사실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 그 자체가 좋은지,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지, 스토리가 잘 만들어진건지, 실화를 소재로 한 내용인지? 라는 등등의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제가 문득 생각하게 된 호기심과 궁금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나름 자주 볼 수 있는 가짜와 진짜가 문제가 되는 사례는 드라마에서 나온 것 같은 고가의 명품을 선물받았을 때나, 결혼식을 할 때 주고받는 고가의 다이아몬드 반지같은 예물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아주비싼 명품이나 다이아몬드 반지는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는 편하게 막 사용이 가능한 실제 사용성 보다는 중요하고 값이 비싼 소중한 느낌의 상징성이 큰 물건이기는 하기 때문에 큰돈을 들여서 어떤 중요한 행사나 이벤트에 명품이나 다이아 몬드 반지를 준비하고 선물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례를 한개 만들어 생각해 보죠. 여기 오랜기간 사귀어 온 두 사람이 있습니다. 남자친구는 몇 년 동안 돈을 아끼고 아껴서 다이아몬드 결혼 반지를 삽니다. 두 사람의 저녁식사 이벤트에서 남자친구는 준비해둔 반지상자를 열어 여자친구에게 반지를 건네는 순간, 그 반지는 단순히 값비싼 금과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한 약속이 됩니다.


그 반지를 주는 시점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남자친구가 끼워주는 반지가 값비싼 진짜 다이아몬드인지, 싸구려 가짜 인지는 아마도 크게 중요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그 반지를 받는 여자친구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아마도 이런 것일 껍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제는 평생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 하는구나 ”라구요.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행복하게 20여년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흐른 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고 생활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그 다이아몬드 결혼 반지를 팔기위해 보석상에 가서 얼마나 받을 수 있을 지 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정사는 반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합니다. “이건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큐빅이에요.” 그 순간, 반지의 진실, 실체가 드러납니다. 정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하지만 그 때 정말 바뀌는 것은 무엇일까요? 반지일까요, 아니면 그 반지를 바라보던 부부의 마음일까요.


그 때 만약 실망이 컸다면 그 실망감은 어디서 오는걸까요? 내가 지금까지 20여년동안 가짜를 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살아온 감정과 기억까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우리는 그 둘을 쉽게 분리하지 못합니다. 사실 그 반지가 진짜 다이아몬드였다고 한들 받을 수 있었을 가격이라는 것도 얼마 안될텐데 말입니다.


보통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사실이냐 아니냐”로만 나누려 합니다. 보석 감정서가 있고 기준을 통과하면 진짜, 그렇지 않으면 가짜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런 구분은 필요합니다. 가격을 매기고, 거래를 하고, 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진짜와 가짜는 단순히 물질이나 정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이아몬드가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 된 것은 단단한 성질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광고, 영화, 소설, 그리고 사람들의 믿음 덕분입니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라는 상징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았기에, 그 다이아몬드라는 것이 특별해진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 반지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보다 그 반지를 준비하고 건네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주는냐, 받는 사람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가 사실은 실체이고 진정한 가치입니다. 진짜와 가짜의 문제는 가격과 그 본질적인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간의 관계와 의미의 문제로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무지”라는 단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모두 그 반지가 진짜라고 믿고 주고받았다고 해봅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짜였다고 하더라도, 그때 그 순간에는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이 무지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간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됩니다. “혹시 날 속인 것 아닐까” 같은 의심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냥 “이 사람이 나를 위해 이런 준비를 했구나”라는 고마움과 설렘만이 남습니다. 그때의 무지는 어쩌면 순수에 가까운 상태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무지를 나쁜 것으로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진실되게 만들어 줍니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이 안다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특정 시점, 제한된 정보, 한정된 시각 속에서 잠정적으로 붙여놓은 이름일 뿐입니다. 오늘의 진실이 내일의 오해가 되기도 하고, 내일의 발견이 오늘의 판단을 뒤집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때로는 아직 아무것도 덧씌워지지 않은 무지의 상태가 더 순수한 지점일 수 있습니다. 잘못된 확신도 없고, 과장된 해석도 없고, 편견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를 진짜라고 믿고 주고받던 그 순간, 사실과는 어긋나 있었을지 몰라도 감정의 진정성은 오히려 더 온전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무지하다는 것은 곧 순수함이고, 그 순수함의 관점에서 감정적인 가치는 보존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다시, 반지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으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가 정말로 마음이 아픈 부분은 어디일까요. 단지 “사실이 틀렸다”는 점일까요, 아니면 “그 사실 때문에 그동안의 모든 마음까지 가짜였던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어오는 순간일까요. 만약 반지를 준 사람도 가짜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 상황은 다소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 사람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으로 반지를 고르고, 진짜라고 믿으며 건넸던 것입니다.


이 경우 반지가 가짜였다는 사실은 두 사람 모두의 무지이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한 기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은 “그때 그 마음은 진짜였는가”입니다. 두 사람 모두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반지가 가짜였다는 진실은 그 순간의 가치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반지를 준 사람이 처음부터 가짜라는 걸 알고도 일부러 숨기고 줬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물론 이런 경우에도 다양한 배경과 이유 그리고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이것 역시 단정은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의 슬픔은 “가짜 반지”가 아닌 “가짜 마음”을 향하게 됩니다. 물건이 진짜냐 가짜냐보다 더 슬픈 것은, 그 물건을 통해 나에게 다가온 태도와 의도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대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나란히 놓고 보면, 가짜라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진실이 아니었다”는 점 그 자체가 아니라,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가치가 의미없어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짜가 위험해지는 이유는 진실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신뢰, 기억, 관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떠오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끝까지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알고 나서 상처 받을 바엔, 모르고 순수하게 믿는 게 더 행복한 것 아닐까.” 라고 말이죠. 어쩌면 무지와 착각이 우리를 보호해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둘 다 그 반지가 진짜 다이아몬드라고 믿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진실에는 상관없이더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완전히 외면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진짜 같은 가짜”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합니다. “느낌이 좋으면 됐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태도는, 위험한 태도입니다. 누군가의 의도적인 거짓과 조작이 우리의 생각과 선택, 믿을수 있는 관계를 마음대로 흔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는 숫자나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쌓여온 시간, 그때 상대가 느꼈을 감정, 말로 표현하지 못한 기억과 상황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째로 무시한 채, 단 하나의 진실이라고 이야기되는 사실만으로 관계 전체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작은 진실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너무 크게 내세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것은 때로는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가짜를 판단하기 보다는 진실을 보려고 애쓰되, 그 진실이 이미 존재하던 가치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만은 치환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하고, 가치를 소중히 여기되 그 가치를 이유로 불편한 진실을 끝없이 외면하지 않는 것. 이 양쪽의 균형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쩌면 좀 더 현실적인 태도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어떤 관계든, 어떤 경험이든, 처음에는 나름의 순수한 지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운함도 쌓이고, 오해도 생기고, 상처도 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의 순수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러 겹의 경험과 감정 아래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어쩌면 그 다이아몬드 반지가 가짜라는 데에 실망과 분노가 그 반지에 얹혀 있던 좋은 기억을 덮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사이에 시간과, 사랑과, 이야기가 그 다이아몬드의 가격보다는 더 소중하고 중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언젠가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 우리가 서로를 아끼던 마음은 진짜였어.” 이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이미 진짜와 가짜의 단순한 경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은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엇을 ‘진짜로 소중하다’고 부를 것인지에 대한 각자의 기준도 필요합니다. 그 기준은 단순히 사실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 그때의 감정, 서로를 위해 내렸던 작은 선택들, 그리고 한때는 정말로 순수했다고 믿을 수 있는 어떤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집니다.


가짜와 진짜의 진정한 차이는, 결국 본질적인 물질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진실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아주 인간적인 관계가 만들어주는 가치속에 숨어 있습니다.



되지도 않는 개똥철학을 주저리주저리 너무 길게 쓰게 되었네요..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2026년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모든 일이 다 잘 풀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건 진짜 제 마음이니 믿어주세요~ Happy New Year~!!!




제가 예상한 티셔츠 판매가격은, 샤넬 로고 티셔츠: 80만 원 / 나이키 로고 티셔츠: 4만 원 / 나이스 로고 티셔츠: 1만5천 원 / 무지 티셔츠: 1만 원 정도가 설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정확할리는 없습니다 ^^).

설정사유는 실제매장에서 샤넬 로고 티셔츠는 수십만~백만 원대까지 형성되고 있고, 여기에는 원단 차이가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 희소성, 지위 상징” 같은 무형 가치가 대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나이키 기본 면 티셔츠는 보통 2만~5만 원 선에 형성됩니다. 그래서 1만 원짜리가 대략 2~4배, 즉 2만~4만 원 정도로 형성되는건 자연스럽습니다. 나이스가 문제인데.. 무지 1만 원에서, 로고 인쇄나 나염,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는 최소 비용을 감안하고, 그냥 무지만 있는 것보다, 나이키 느낌을 살짝 연상시키는 형태로 나이키를 사기엔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나도 뭔가 로고 있는 티셔츠 입는다”라는 심리적 만족을 붙여서 1만 2천원에서 1만 5천원 사이에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저는 예상했습니다.(아마도 장사하시는 분들은 처음에는 1만 5천원 제시후에 흥정하시면서 1만 3천원 부근에서 결정.. 하시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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