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연습: 점심
점심식사 앞에 선 취준생의 불안
나는 모순덩어리다. 내 모순은 실생활 아주 가까운 데서부터 발현되는데, 점심 식사가 좋은 사례다. 나는 먹고 싶은 게 많으면서 동시에 특별하게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 1월 어느 날 점심을 먹다 나는 일주일간 세 가지 음식만 먹었음을 깨달았다. 집 근처 마트에서 사 온 우유와 시리얼, 집 근처 파스타 가게에서 주문한 크림 리조또, 집 근처 가게에서 사 온 토마토 치즈 치킨까스. 왜 그렇게 되었냐고? 내가 편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오전 8시 30분에 부모님이 모두 출근해 텅 빈 집 안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 옆에 있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1시에 배가 고파지자 먹기로 선택한 것들은 모두 내가 편안하게 여기던 음식이었다.
나는 이렇게 변명한다. 나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앞의 생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내 앞의 작은 식사에서도 실패하고 싶지는 않았다. 입맛에도 없는 식사를 하고 기분을 버리는 일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편안한 음식을 먹는다. 나는 동시에 이렇게 변명한다. 나는 꺼리는 음식도 없고, 특별하게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 또한 식도락을 내 인생을 구성하는 한 미덕으로 여긴 적도 없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결정을 내리는 일엔 영 젬병이다. 1시가 되었고 먹고 싶은 음식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데 배는 채워야 한단 말이다. 그래서 편안한 음식을 먹는다.
이 모순은 또 다른 모순으로 발전한다. 내 희망과 현실이 충돌하게 된다. 나는 인격이 일상의 작은 습관에서도 발현한다고 믿고,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일상에서 모험을 떠날 수 있어야 자기 앞의 생에서도 모험을 떠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모험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험을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요즘 타인을 돕는 일을 내 업으로 삼고 싶다고 소박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길에 나가서 타인을 위해 돈을 내 달라고 말하는 일이나, 거리에 나가서 다른 약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는 건 정작 꺼려진다. 나는 다시 모순을 만든다. 나는 점심에서도, 인생에서도 편안한 것만 찾고 모험하지 않는 사람이다.
모험하지 않는 사람이다…. “야, 점심 뭐 먹지?”
성수가 차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물었다. 주희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내가 제일 무서운 질문이 뭔지 알아?” 성수는 엉뚱한 말도 잘 받았다. “오늘 점심 뭐 먹지?” “눈치 빠르네.” “좋아, 아무거나 던져볼게. 일식.” “초밥 어제 먹었어.” “중식.” “나 기름진 거 잘 못 먹어.” “한식.” “내가 매일 먹는 게 된장찌개야.” “분식집 김밥.” “단조로워. 라면이 필요한데 건강에 나빠.” “뭘 먹을지 모르면서 가리는 건 많구나.” 둘은 앞에 보이던 샌드위치 가게로 타협을 봤다. 주희는 풀드포크를 골랐다. 지금껏 안 먹다 처음 먹어보는 메뉴였다.
“해보니까 어때?” 성수가 BLT 샌드위치 구석을 물으며 물었다. 주희와 성수는 몸을 바쁘게 움직인 터라 배가 고팠다. 둘은 오전에 연탄을 나르는 봉사활동을 했다. 이건 성수의 제안이었다. 성수는 인스타그램에 종종 연탄을 나르며 까맣게 탄 목장갑을 찍어서 올리곤 했는데, 1월 중순, 주희가 깨달음을 얻은 그날 갑자기 봉사활동을 가자는 말을 꺼냈다. 주희는 거절했다. 메시지는 사흘마다 한 번씩 이어졌다. 성주는 주희의 사정을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처음에만 힘들지, 몸에 익으면 쉬워. 한번 해보고 봄을 맞자, 고 꾸준히 말했다.
주희는 한 달 동안 거절하다 돌연 마음을 바꿨다. 모순을 해소하고 싶어서였다.
연탄 육백 장을 두 시간 일정으로 옮기는 활동이었다. 주희는 생전 처음으로 검은 연탄을 보았다. 하나에 3.6킬로그램짜리인 연탄을 두 개씩 들고 날랐다. 주희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연탄은 무거웠다. 성수는 힘에 자신이 있었는지 자신이 연탄을 쌓겠다고 했다. 무거운 연탄을 두 개씩 척척 받아 쌓았다. 쌓은 연탄 사이에 빈틈이 없는지도 살폈다. 주희는 연탄의 무게를 익히고 옮기느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활동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둘은 검은 손, 더워진 몸과 얼굴을 확인했다.
“괜찮네.” 주희는 말했다. “괜찮지? 다음에 또 하자.” 주희는 희망과 현실의 괴리가 좁아졌음을 느꼈다. “풀드포크는?” “그냥 그래.” 주희는 내심 맛있어하며 샌드위치를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