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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Aug 15. 2023

뮤지컬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어느 진지한 뮤지컬 이야기 1

뮤지컬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실,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상을 바꾸자!"라고 당당하게 외친 뮤지컬이 있다는 점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지금부터 <헤어(Hair)>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야기를 해 드릴 거예요. 1967년에 처음 무대에 오른 작품입니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정도로 유명한 작품은 아니에요. '뮤지컬 헤어'를 검색하면 <헤어> 대신 <헤어스프레이>가 더 많이 나와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공연해 본 적도 없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에서는 나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헤어>는 당대 사회가 고민하고 있던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수용한 작품이었어요. 관객에게 거침없이 다가가 물음을 던졌고요. 틀을 깨부수고 뻗어 나갔어요. 그래서 마음에 들었답니다. 어쩌면 뮤지컬 한 편이 즐거움만 주는 걸 넘어서 사회에 작게나마 균열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됐고요. 강렬한 힘을 뿜어내는 작품을 가만히 먼지 밑에 두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앞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해요. <헤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요? 무엇을 남겼을까요?


자, <헤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뮤지컬 <헤어> (Hair: The American Tribal Love-Rock Musical)


작사/각본: 제롬 래그니(Gerome Ragni, 1935~1991) & 제임스 레이도(James Rado, 1932~2022)

작곡: 갈트 맥더못(Galt MacDermot, 1928~2018)


공연 연혁:

초연 1967년 10월 17일, 미국 뉴욕 The Public Theater(오프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초연 1968년 4월 29일, 미국 뉴욕 Biltmore Theatre(현 Samuel J. Friedman Theatre)

웨스트엔드 초연 1968년 9월 27일, 영국 런던 Shaftesbury Theatre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2009년 3월 31일, 미국 뉴욕 Al Hirschfeld Theatre

대한민국 정식 라이선스 공연 제작된 적 없음


의의:

- 1960년대 문화와 주요 사회 이슈를 수용해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뒤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작품 제작 모델을 처음 시도했습니다.

- 최초로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록 뮤지컬이자, '콘셉트 뮤지컬'을 선도한 뮤지컬입니다.


한계:

- 1970년대 히피 문화가 빠르게 몰락하고 베트남 전쟁도 마무리되면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을 잃어버렸습니다. 1968년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는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함께 1970년대 초 록 뮤지컬 붐을 일으켰으나 뮤지컬 시장 지형을 완전히 바꾸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넘버: 2009년 리바이벌 버전 넘버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기준 넘버 리스트. 1막은 "Aquarius"에서 "Air" 순서로 진행하면 된다. 리프라이즈 포함 총 32곡이다.




그럼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헤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196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부터 간략하게 짚어 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두 번째 이야기에서 해 드릴게요.


1960년대 미국 사회는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젊은 세대가 등장해 사회가 요동쳤고, 전쟁과 만나 격렬한 운동으로 폭발했죠.


(좌)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 ⓒ Yoichi Okamoto/LBJ Library (우) 1966년 <타임> 올해의 인물, 베이비붐 세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20대를 맞이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경제가 회복하고, 냉전이 한창 벌어지는 배경에서 자랐어요. 대공황과 전쟁을 경험한 기성세대와는 살아온 과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과거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았죠. 여기에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방어하겠다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정권이 전쟁을 벌이던 베트남에 병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실익을 얻지 못하고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더 깊숙이 개입하고 규모를 축소 발표하려 했지만 언론이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1968년 1월, 베트남에 있던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받아 점령당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됐습니다. 이를 본 미국인들은 더 이상 정부의 설명을 믿지 않았습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전주의와 징집 거부 운동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그해 11월에 대통령 선거도 있어서, 확전과 반전이 극심하게 대립했습니다. 몇 달 뒤 유럽에서는 젊은이들이 권위주의 철폐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갔습니다. 항의의 물결은 프라하와 파리를 포함한 전 유럽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남아메리카와 일본에까지 이르렀어요. 동시에 불합리에 맞서 여성이, 흑인과 소수인종이, 성소수자가, 환경운동가가 의문을 던졌습니다.


이 일련의 움직임에는 후일 68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헤어>는 이 운동의 중심에서 태어났어요.


(좌) 1967년 3월 2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집회 'Love-In' (우) 자유로운 마약 사용을 주장한 심리학자 티모시 리어리/Getty Images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를 갈망했어요. 공동체 생활을 했고 대규모 집회도 열었죠. 50년대의 보수주의 성 관념을 타파하고 성 해방을 추구했습니다. 아시아 문화와 종교에 심취해 직접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려는 의도로 마약을 복용했죠. 무한한 옷차림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예전과는 같지 않았어요. 세상은 이들에게 히피(Hippie)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히피가 <헤어>를 제작했죠.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고 말씀드렸죠? 다음 글에서는 1960년대 브로드웨이가 처했던 상황과 음악 업계의 변화, 그리고 <헤어>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쓸 용어 설명]

브로드웨이: Broadway.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도로 이름으로, 대개 이를 따라 위치한 일련의 극장들 중 500석 이상의 극장을 의미한다.

오프 브로드웨이: Off-Broadway. 100석 이상, 500석 미만의 극장이다.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Off-Off Broadway. 100석 미만의 극장이다.

리바이벌: Revival. (특히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한 번 올라왔던 작품을 다시 올리는 것.

캐스트: Cast. 공연에서 연기자들이 맡은 배역. 대개 이를 아울러 한 공연에 참여한 연기자 전체를 의미한다.

넘버: Number. 뮤지컬에 사용되는 음악.

제4의 벽: 무대 또는 스크린과 객석 사이에 존재한다고 간주되는 투명한 경계.

토니상: Tony Awards. 매년 6월에 브로드웨이 연극/뮤지컬 시즌을 결산하며 수여하는 상. 시즌은 하반기에 시작한다. Ex. 2019-2020 시즌.

리프라이즈: Reprise. 재현. 뮤지컬 내에서 한 번 사용되었던 넘버를 변주하여 다시 사용하는 것.

웨스트엔드: West End. 영국 런던의 극장 거리.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대응한다.


[배경화면]

<헤어>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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