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강원도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2시간 정도 달리고 있는데 SNS에 이런 게시글이 뜬 것이다. 그녀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차를 정차하고 다시 한번 천천히 살펴보니 정확히 적혀있는 친구 이름 세 글자와 빈소, 발인 날짜.
작년 이맘때쯤 친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초등학교 때까지 절친이었던 그녀는 중학교 때쯤 필리핀으로 온 가족이 유학을 갔다. 언니는 프로골퍼였으며,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집안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고 대학생이 될 때쯤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후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이 닿아 친구가 한국에 비자 문제로 일년에 한 번 들어올 때마다 우리는 얼굴을 보게 됐다.
당시 나는 전혀 그녀의 우울한 감정들을 감지하지 못했다. 아마 자주 보진 못했기 때문이겠지. 이후 다른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어보니 그녀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문득 블로그에 글을 쓰던 것이 생각나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그곳에는 마치 소설인 것처럼 본인의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누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감정을 아시지요? 이제 그 작은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떠나렵니다.
이만 말을 줄이겠습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가게의 대문 앞에 나의 유서를 붙여주세요. 이 유서를 쓰는 노력 한 번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향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남은 위스키들은 친구들이 가져가 주고, 나를 기리며 마셔 주세요. 현재 남아있는 손님들은 돈은 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이만 나는 쉬겠습니다.
믿기지 않는 부고 소식. 당시 부고 문자도 제때 받지 못해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에 배웅하지도 못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가족들이 연락처가 있는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나 마음에 짐 하나는 지고 살기 마련이지만 장례식에 친구들의 인사조차 허락할 수 없는 가족 간의 사정이 대체 무엇일까. 너무 마음이 아팠다. 늦은 배웅길에는 비가 참 많이 왔다. 담양의 한 공원 납골당에 그녀의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만 새것같이 멀끔했다. 그걸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그곳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죽기 6개월 전쯤이었다. 친구는 유학을 마치고 재능을 살려 이태원에서 음식점을 열었는데, 매일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예약한 날, 갑자기 가게의 수도가 고장나 예약이 취소됐다. 그리고 따로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인연이 끝나기라도 할 것처럼 만나려 해도 만나 지지 않는 순간. 그때가 딱 그랬다.
나는 친구가 가고 나서 한동안 누군가 툭 치면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일상을 보내려 노력했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맘때쯤 장거리 연애를 하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더 이상 버틸힘이 없었다. 어느 날 출근해 일을 하다 옆자리에 앉은 선배를 불렀다. 따로 이야기 좀 하고 싶다며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선배 제가 사실 최근에 남자친구랑도 헤어지고.. 친한 친구도..이렇게 됐어요. 저 너무 힘들어요.” 선배는 당황했지만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수빈아 힘들 때는 그냥 힘들다고 해. 울어 괜찮아.”
신기하게도 그렇게 감정을 쏟아낸 이후 나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흘러가는 감정을 억지로 마음에 담아두면 계속 과거에 살게 된다. 나는 당시 친구도, 남자친구도 내 마음에 담아둔 채 흘려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에는 일상을 더 건강하게 잘 보내는 것에 집중했다. 일을 더 꼼꼼히 살피고, 퇴근하고 운동을 한 후 저녁을 든든하게 챙겼다. 주 3회 가던 운동을 매일 갈 정도로 일상을 더 빈틈없이 보내려 노력했다. 주말에는 좋아하는 책방에 가서 멍 때리거나 혼자 앉아 책을 읽곤 했다.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니 마음이 많이 회복됐다.
일상을 단단하게 잘 보내는 것은 삶을 버텨낼 힘을 준다. 운동을 하고, 밥을 챙겨 먹고 또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이런 것들이 결국 삶을 굴러가게 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녀의 일상은 어느 지점에서 어긋나고 있었을까. 나에게 다시 친구와 대화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일상의 힘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지키지 못했던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을 지켜주고 싶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친구와 나의 부모님은 모두 맞벌이로 일하시느라 바빴다. 우린 주로 혼자 집에 있거나 학원을 가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는 집에 초대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다. 겨우 초등학생이 말이다. 당시에는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닫지 못했다. 스팸, 계란말이, 된장국, 갓 지은 따뜻한 밥. 그 모든 것이 초등학생의 손에서 나왔다. 친구는 항상 “배고프지? 얼른 먹자!”라며 웃었다.
마음속으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늦게 와서 미안해 가은아
행복한 어린 시절을 함께해 줘서 고마웠어
집에 갈 때마다 차려줬던 따뜻한 밥 잊지 못할 거야
다음생엔 우리 오래오래 친구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