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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없는 편이다.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조금 무책임한걸까. 게다가 소위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세대에 끼어있다. 그래도 어쩌나. 관심이라는 것은 하나의 마음인데, 마음이라는 것은 "생겨라"라고 아무리 명령해도 쉽게 생성되지 않는다.
정치의 가장자리에 관심이 가는 시기가 있었다. 그 첫째는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려는 정부와 축산 농가의 생존권 대립이 있던 시기, 두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만료 직전부터 사망 전후의 시기, 세번째는 민간인에게 놀아난 국정농단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의 대통령 부부의 다이내믹한 재판들.
이마저도 내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억울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시작된 관심도 아니다. 사건 자체가 영화 이상의 시나리오로 펼쳐지거나, 이를 두고 펼쳐지는 다양한 세력들의 논쟁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와 논쟁들을 접하며, 나와 가까운 정치색을 알게되었다.
최근에는 시사인 주간지를 구독하고 있다. 이 역시,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겠다는 의지보다, 인쇄되어 나오는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최소한을 알고 싶었던 것에서 시작했다. 일간지가 우리집까지는 배달되지 않아, 주간지를 택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YTN 뉴스를 대충대충 듣고 있다. 대부분 울화통이 터지는 소식들이다.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정치에 대한 관심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정치색이 다른 사람을 계몽하는 것? 또는 나와 반대 이념을 가진 자는 걸러내는 것? 자녀에게 올바른 정치 관념을 심어주는 것? 투표를 위해 여러 정당들의 도덕성과 국정수행능력을 수시로 파악하는 것? 마지막으로, 내가 알아봤자 얼마나 제대로 알 수 있는가.
인간은 특정 나이가 넘어가면 정치-사회-종교 등 굵직한 가치관이 형성되므로 이들을 계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오만할 수 있다. 사람을 걸러내는 것은 정치적 이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많다. 자녀 역시 본인이 원하는 정치적 색깔을 갖거나 무관심할 자유가 있다. 단, 자발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물어오는 경우는 예외이다. 마지막 가능성인 '정보 수집'이 투표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사실인데, 나는 투표권을 가진 이후로 한번도 반대 정당을 선택한 일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도덕적, 법적 실수를 범한다 해도 큰틀에서 내가 추구하는 중대 가치관은 변함없으니 선택 역시 변화는 없을 확률이 높다.
요약하자면, 내 정치적 가치관은 남들과 마찬가지로 변함없을테고, 투표 역시 항상 같은 정당, 적어도 유사 정당에 할텐데 대부분 스트레스만 주는 이슈로 가득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요즘처럼 재미로 접근하는 것의 설득력이 가장 높다. 소박하게 혼란스러운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