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미노는 연결되어 있었잖아.
IMF가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가계 통장의 파멸을 친히 알려주던 1998년. 광명시의 고층 아파트에서 아버지 고향, 양주군의 40년 남은 낡은 반지하 집으로 밀려난 후에도 집안의 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끝내고 고등학생이 될 때 쯤, 누나는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누나의 온기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부모님 사이로 부는 찬바람을 감지했다. 친구들과 쓸데없이 어울리며 감정과 시간을 소모했다. 그냥 멍청한 사춘기 소년이었다.
2003년 봄, 나도 유학을 떠났고 두 분 역시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었고, 거리가 멀어지니 신경을 덜 쓰게되었다. 두 분의 이별이 내 인생에 큰 파장을 준다고 느끼지 못했다. 두 분도 잘 지내는 것 같다고 느낄 때 쯤, 차라리 잘되었다 생각이 들 때 쯤, 어머니가 난소암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IMF로 망가진 두 분의 관계는 일단락이 아니라, 아직도 쓰러지는 도미노임을 감지했다. 어제도 오늘도.
엄마로부터 카톡이 온다.
리모컨을 잘못 건드려 TV화면이 안나온단다. 전화로 이것저것 설명드렸지만, 70에 가까운 엄마가 외부입력에서 HDMI 1과 2를 테스트하여 제대로 송출되는 화면을 선택하는 것은, 사법고시나 아랍어처럼 어려운 일이다. 퇴근 후 설명하겠노라며 전화를 끊고 일을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 2주 전에는 도어락이 고장났고, 비슷한 시기에 에어컨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시 그로부터 2주 전에는 거실 형광등이 나갔다. 욕실은 낡은 전구가 터져 어두웠고, 욕조 한 쪽에 무게가 쏠려 무너질 징조를 보였다. 이럴 때 아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의 식탁은 부실하다.
깔끔한 성격이지만 침구류는 신경을 못쓰시는 것 같다. 동네가 휑해서 이야기 나눌 벗이 모자라다보니, 가끔 뵐 때 마다 텃밭의 꽃 한 송이 이야기부터, 반갑지않은 정치이야기까지 들어야한다. 당신이 혜택을 받는 것과 부탁하는 것에 대해 지나친 미안함을 느끼는 성향인지라, 몇 개 안남은 내 도미노를 직접 건드리는 일은 엄마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반대로 아버지의 비석은 빠르게 쓰러지고 있을 것이다. 이 붕괴를 돈으로 막을 수 있을텐데, 나 역시 여유가 없다보니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위태롭게 그럴 듯 하다.
밤낮없는 회사일에 정신을 빼앗기자, 저녁 이후의 여유, 운동, 독서 등 여러 갈래의 도미노가 부지런히 넘어진다. 여러 갈래로 몰려오는 무너짐이 나에게로 좁혀온다. 모두 쓰러지기 전에 재빠르게 새로운 도미노를 세운다. 두렵다.
쓰러지는 도미노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주말 뿐이다. 이 시간은 내가 맘편히 쉬거나, 아내와, 강아지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모두 중요한 나의 시간이고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도미노를 유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엄마의 카톡은 숙제같고, 아빠의 종아리는 식탁 다리처럼 가늘다.
부모님의 원망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 때 그 균열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내가 더 강해지기를 기다려 주었다면 어땠을까. 각자의 도미노만 지키기 위해, 서로의 비석을 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