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님, 그런 시대 끝났소.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허름한 상가 지하 순댓국 집. 내가 앉은 테이블 뒤편으로 상가 번영회의 연간 보고가 한창이다. 여든은 넘어 보이는 회장님이 개회사와 안부 인사 후, 작년 말 모 회원님 아들 장례식 불참으로 인해 당사자로부터 크게 혼이 났고, 생각이 짧았던 것을 인정하며 반성했고 그간 지치기도 했으니 오는 7월 새 회장 선출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수저를 달그락거리며 국을 떠먹던 나도 갑자기 조용해야 할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좁은 식당을 가득 채운다. 그때, 회장님의 곁에서 오랜 기간 보조한, 진하게 염색한 머리카락과 더불어 조금은 더 어려 보이는 어르신이 선배님들께 한 말씀 올리겠다며 회장님 옆에 선다. 장례 불참은 회장님의 단독 결정이 아니며, 당시 이 자리에 계신 몇몇 선배님들과의 회의를 통해 -자식의 장례 참석 결정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며- 결정된 사항인데, 당사자는 일방적으로 회장님을 질책했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회장님은 10년 넘게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자리를 지켰고, 항상 좋은 어른으로 제 역할 이상을 했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얼굴을 붉힌다. 동시에, 회장님의 사퇴는 곧 나의 사퇴를 의미한다며, 회장님의 공로와 자존심을 열정적으로 방어한다. 그러면서, 이제 시대가, 나이를 방패로 아랫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앉아계신 선배님들은 최소 80 이상, 후배님은 70 남짓으로 보인다. 선배님들은 고개를 숙였고 후배님은 당당하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연차는 더 이상 아랫사람의 의견이나 역량을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이나 자격이 아니라는 것이 팩트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우리는 이것을 수평문화라고 퉁쳤다. 대놓고 수직적인 조직이야 논외로 해도, 직급 없는 '님' 또는 영어 닉네임 등의 호칭 문화 하나로 수평문화를 운운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 수평문화를 바라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호칭도, 경영진과 사수의 침묵도 아니다. 내 의견이 한표의 비중을 갖는 것이다.
쓰러져 가는 지하상가 번영회에서도 이러한 사회 경향을 외치고 인정한다. 조직에 속한 이라면, 특히 소위 '아랫사람'을 거느린 사람이라면 많이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