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법칙
사람들은 법, 사회적 통념 외에도 각자만의 법칙을 만들고 지키며 또는 그 법칙에 남을 적용하며 산다. 스스로 만든 것들도 있고,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하니까 의심없이 적용하는 것들도 있다.
나는 이러한 통념이나 개별의 법칙들이 정당한지 깊은 질문들을 던지는 버릇이 있다. '왜'라는 질문을 연속할 수록 답을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에서 묻고 답하는 것이지만, 인생을 사는 건 나니까, 그 모든 기준이 나여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다.
몇 해 전 약 8주 간의 전국 여행을 하며, 신년 가족모임에 불참하게 되었다. 작년 추석에는 제주도 여행으로 건너 뛰었다. 이런 나에게 섭섭함을 표하며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명절에는 모든 가족이 모여야 한다'라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왜 그래야 하냐'는 질문에는 통상적으로 '그렇기 때문'이라는 답 외에는 딱히 답을 주지 않았다. 너무 당연해서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명절마다 모든 가족이 모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1 평소에도 대부분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거나 직간접적으로 안부를 확인하는 편이다.
2 장기간의 여행을 가기에 적합한 휴일이 확보된다.
3 위 1번과 2번 중 1번 이벤트가 더 자주 발생한다. 그만큼 가족이나 친척들을 만나는 일은, 장기 여행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4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가고,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 피곤하다.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일대일로 만나면 참 좋다. 사람이 많아지면 이상하게 쓸데없는 소리를 경청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5 가족이나 친척들과 위 모든 단점/약점들을 상쇄할 만큼 강력한 내적 유대감이 없다.
6 모임 후에 좋은 감정, 기분보다는 엄청난 심신의 피로감을 느낀다.
위 경험은 명절 가족 모임이라는 일례일 뿐이다. 친구끼리는 무례해도 된다, 40세에는 서울에 자가가 있어야 한다, 아이는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일주일에 5일 일해야 한다, 눈비가 내리는 날에는 달려서는 안 된다. 그래야 한다, 그래선 안된다.
나에게는 나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너에게는 너의 법칙이 있다. 동의하진 않지만, 존중한다. 하지만 너의 법칙이 나의 법칙을 건드리는 것은 동의하지도 존중할 수도 없다. 내 명제 안에, 타인을 끼워 맞추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내 멋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오는 피로감과 실망감이라는 감옥의 창살 간격만 좁힐 뿐이다.
그 사람의 법칙을 인정해라. 인정이 안되면 이해해라. 그것도 안되면 세뇌해라. "그는 그런 사람이야"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모든 스트레스를 현저히 낮출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