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배려

좋아, 그렇게라도 자리를 양보 받을 수 있다면.

by Yunus 유누스

임산부 배려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의 정책이나 현상, 가치에는 항상 여러 의견이 존재하니까, 그리고 배려는 강요될 수 없는 덕목이기에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숨기지 못하겠다.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하드웨어가 필요했던 사회적 배경과, 각기 다른 이유로 자리에 앉아 버티는 사람들.

%EC%9E%84%EC%82%B0%EB%B6%805.jpg?type=w966 과거 진행했던 프로젝트 뱃지

분홍색 중에도 눈에 띄는 핫핑크를 적용하고, 후라이팬 만한 스티커까지 붙였으며, 눈 앞에는 임산부 뱃지까지 보이는데, 눈치를 보는 건 임산부다. 게다가 실패의 요인 중 한 가지가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된 시스템이라는 분석도 있다.


놀랍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배려하는 것에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했다니. 그래, 그것도 그럴 수 있지, 억지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그런데 절대 삼켜지지 않는 지점이 있다. 바로 배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임산부가, 노약자가 왜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냐는 것이다. 생산성이나 효율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나온 의견일 것이다. 즉, 가치 우선순위에 대한 싸움을 하겠다는 건데, 이 의견을 반박하기 위해 고민하다보면 씁쓸하다. 그럼 만약, 임산부나 노약자의 출퇴근 시간 대중 교통이용이 총체적인 관점에서 효율이 더 좋다고 하면 '아 그렇군요!' 라며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걸까. 아니다. 애초에 양보나 배려의 생각이 없던 사람들일 것이다. 혹은 똥 씹은 표정으로 자리를 내어줄까?


우리는 이렇게 강요된 배려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되는건가.


참 혼란스러운 주제이다. 아니,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알고리즘 vs 모르고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