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그렇게라도 자리를 양보 받을 수 있다면.
임산부 배려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의 정책이나 현상, 가치에는 항상 여러 의견이 존재하니까, 그리고 배려는 강요될 수 없는 덕목이기에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숨기지 못하겠다.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하드웨어가 필요했던 사회적 배경과, 각기 다른 이유로 자리에 앉아 버티는 사람들.
분홍색 중에도 눈에 띄는 핫핑크를 적용하고, 후라이팬 만한 스티커까지 붙였으며, 눈 앞에는 임산부 뱃지까지 보이는데, 눈치를 보는 건 임산부다. 게다가 실패의 요인 중 한 가지가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된 시스템이라는 분석도 있다.
놀랍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배려하는 것에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했다니. 그래, 그것도 그럴 수 있지, 억지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그런데 절대 삼켜지지 않는 지점이 있다. 바로 배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임산부가, 노약자가 왜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냐는 것이다. 생산성이나 효율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나온 의견일 것이다. 즉, 가치 우선순위에 대한 싸움을 하겠다는 건데, 이 의견을 반박하기 위해 고민하다보면 씁쓸하다. 그럼 만약, 임산부나 노약자의 출퇴근 시간 대중 교통이용이 총체적인 관점에서 효율이 더 좋다고 하면 '아 그렇군요!' 라며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걸까. 아니다. 애초에 양보나 배려의 생각이 없던 사람들일 것이다. 혹은 똥 씹은 표정으로 자리를 내어줄까?
우리는 이렇게 강요된 배려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되는건가.
참 혼란스러운 주제이다. 아니, 혼란스러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