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바다

by Yunus 유누스

추석 연휴를 앞당겨 지내기 위해, 오랜만에 엄마 집엘 놀러 간다. 현관문을 열고 몇 걸음 가지 않았을 때, 과거와는 사뭇 다른 집 냄새다. 좋지 않다. 잠깐, 먼저 방으로 가있어, 다급하게 말한다. 할머니 기저귀 갈아야 해서, 엄마 엉덩이를 반대로 들어봐, 아니 더 높이. 나는 어차피 양손 가득 짐이 많아 방에 내려둘 겸 뒤뚱거린다. 내일은 아내와 아기가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고민이 된다. 이 냄새, 괜찮을까.


뒤처리가 끝난 후 엄마의 작은 한숨이 조용히 퍼지다가 사라진다. 눈치껏 거실로 나가 눈곱이 잔뜩 낀 할머니의 귀에 대고, 저 왔어요, 아내랑 아기는 내일 오고요, 추석이라 왔어요, 볼륨을 높인다. 잘 듣지 못하신다. 아까의 냄새보다 더 기괴한 향이 코를 찌른다. 거북한 냄새에 강한 민트향이 뒤섞였다. 엄마 이 냄새 뭐지? 할머니가 엉덩이에 타박상이 있어서 파스를 좀 뿌렸어,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네, 아- 그래 할머니가 이래저래 고생이 많으시네, 엄마도.라고 말하면서 아까 했던 고민을 다시 하고 있다. 엄마가, 엄마 아기 봐봐 하며 할머니 옆에, 그 병상 위에, 김치 국물과 간장이 묻어있고, 할머니의 침과 땀으로 젖었을 것만 같은 그 이불에, 종말을 재촉하는 병환의 침대 위에 아기를 눕히려고 하면 어쩌지.


베란다에 쌓여가는 쓰레기 같은 낡은 소품과 가구들, 여름이 한참 지났지만 주방을 비행하는 초파리, 두서없는 분리수거함, 몇 달 전 본 음식이 구석구석 자리를 꿰차 터질 것 같은 냉장고. 엄마의 집은 왜 언제나 정신이 없는 걸까. 나는 뭐 하는 아들놈이지.


엄마는 70대다. 외할머니는 100세를 바라본다. 80세까지도 해뜨기 전 서울대공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그래서 건강하게 장수할 것 같던, 엄마의 엄마는 지금 의료용 침대에 정박해있다. 지는 해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닻을 걸고 그 줄의 길이만큼만 움직인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배는 떠날 수 없다. 그들의 바다는 밀려오는 물도, 나가는 물도 허락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살던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을 맡은 대기업 건설사는 올해 여름 모든 입주민에게 행복한 추방을 통보했다. 요양원으로 모시자던 이모와 아버지처럼 따르던 외삼촌의 말씀을 처음으로 거스르고, 엄마는 기어이 집에서 할머니를 모신다. 평생을 그래왔던 것처럼, 할머니의 자손들은 예외 없이 효자들인데, 엄마는 그 효심에 그동안 모든 재정 부담을 떠안았던 외삼촌에 대한 고마움을 더해 할머니의 여생을 책임지고 싶었다. 지금도 요일별로 돌아가며 외삼촌과 이모가 할머니를 돌보러 오시지만, 엄마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엄마는 마음은 낙관과 거리가 멀고 몸은 연약하다. 몸과 마음 중 먼저 약해진 한쪽은 다른 한쪽을 빠르게 허문다. 할머니를 돌보기 시작한 이후로는 상호 약화가 가속화되었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언제나 새어 나오는 한탄과 비관의 향은 두통을 유발한다. 나는 그런 유의 대화를 싫어하는데, 상대가 엄마니까 거부할 수는 없다.


나는 안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절대 보내지 않을 엄마의 고집, 그래 그게 정 싫다면, 가내 요양의 기술적인 접근을 제안해도 엄마는 듣지 않을 것, 들었다고 해도 실행할 수 없을 것. 엄마는 나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신뢰도는 비례하지는 않으므로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드디어 내 집을 마련했다며, 신나게 뉴스를 전하던, 엄마의 30년간의 알뜰함이 담긴 소중한 집은 불쾌한 향이 진동하는 바다가 되었다. 낮에도 어두운 밤의 바다이고, 항해 불가한 축 처진 배들만이 묶여있는, 물고기 한 마리 없는 척박한 바다이다. 외할머니가 올라간 계단은 곧 엄마가 그대로 오를 것이다. 운명이다.


나는 헤엄칠 수 있는 바다가 좋다. 물고기를 볼 수 있는 바다가 좋다. 엄마의 집이란, 새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본능적으로 회귀하게 되는 목적지였으면 한다.


난 너무 이기적일까. 불효자일까. 내가 노인이 되면 만나야 하는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 나의 계단은 윤기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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