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런 남자가 어딨어
마흔이 넘도록 직장 생활하면서 여자 끼고 노는 술집 안 가본 남자가 어딨 냐는 말에 토끼눈이 된 나를 보며 선비인 척하지 말라는 제약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반응이 참 얄밉다. 끝까지 동의를 얻지 못하자, 문제가 있는 건 마치 나인 듯 찝찝하게 대화가 마무리된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은 무리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그 친구도 아니라고 한다.
사는 모양이 매우 다양한 것 같다가도, 어떤 부분은 한 번 발들이면 원안에 갇힌 개미처럼 맴돌게 되나 보다. 본인이 경험한 것을 전부라고 여긴다. 제약 업계가 영업을 많이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고, 그 세계에 사는 내 친구는 다른 세계는 모르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겠지. 오해는 없길 바란다. 제약 세계에 있지만 술과 여자와는 상관없는 남자도 있다.
특정 정책 또는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면, 이 시위로 누가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냐며 배후조사를 먼저 외치는 집단이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내 편에 서는 민중의 시위란 돈으로 매수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권력이란 시민에게 봉사하는 힘의 대행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되거나 임명되는 순간 윗사람으로 군림하는 자들이 있다. 기차역 안으로 관용차를 끌고 들어간다던지, 소방서 긴급전화로 전화를 걸어 본인이 고위 공무원임을 외친다던지, 시장 유세할 때 시민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던지고 명령조로 말한다던지. 이들은 시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반대 정당의 정치인에게 '위선자'라고 말한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공권력을 가진 나는 시민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는 얘기에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조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 재미란 반드시 술을 동반해야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이 불쌍해서 밖으로 끌어내려다가도, 그렇지 않은 세계에서 맛볼 쓰라린 충격-당신이 그동안 얼마나 저질이었고 편협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충격-을 생각하면 그냥 그 변함없는 세계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낫겠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유유상종의 우물은 깊고 어둡다. 너도 나도 경계해야 할 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