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정은 작가 Nov 25. 2018

끝과 시작은 어쩌면 동음이의어가 아닐까

시 필사를 하며 쓰는

끝과 시작. 시작과 끝.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다.

삶의 끝이라 생각했던 순간은 되려 무언가가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야 안다.

그 시간을 잘 지내야 안다.

끝이란 폭풍에 잠식당하지 않고

눈 똑바로 뜨고, 정신 단단히 차리고 비틀거리더라도 흔들거리더라도

매일매일 자신에게 집중하다 보면 안다.


흔들리더라도 꺾이지 않고

비틀거리더라도 넘어지지 않으려 삶의 리듬을 타는 법을 익힌다.

물론, 쉽지 않다. 

물론, 넘어지기도 한다.

물론, 주저 않기도 한다.


넘어져도 주저앉아도 괜찮다.

넘어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일어설 수 있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할 수 있게 되니까.


그리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리듬을 타는 법을 익혀 두면 

폭풍과 파도 앞에서 이것들이 언젠가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된다.

알기 때문에 견디기 괴롭기도 하지만

알기 때문에 시간을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끝이라 믿었던 시간들이 새로운 꽃, 열매, 뿌리가 되는 과정임을

시작임을 목도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보았다.

무일푼에서 많은 걸 이뤘고, 과욕으로 인해 모든 걸 잃었다 생각한 순간

자신이 가진 전부를 만나며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쇼맨이 이런 대사를 한다.


"전부를 잃었지만 얻은 것도 많네요. 날 돌아오게 했어요. 화려한 불빛에 눈멀지 않을 거예요.

이제부터는 내일로 미뤘던 걸 당장이라도 시작할게요. 오늘 밤부터요. 이 약속들이 날 움직일 거예요.

내 마음속에 찬가처럼 울리겠죠. 이제부터는 "


내가 만났던 폭풍과 끝이라 생각했던 지점이 다시금 알을 깨고 나오는 시작이 되었듯

한 해의 끝이 다 가오 고 있는 오늘,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는 지점인 것처럼


끝과 시작, 어쩌면 동음이의어가 아닐까.

박노해 시인의 시를 따라 적으며 생각한다.





끝과 시작 _ 박노해


꽃은 시들어 떨어진다.

하지만 열매한테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열매는 익어 떨어졌다.

하지만 뿌리한테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실패해 쓰러졌다.

하지만 나 자신한테는 

진정한 삶의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