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는 제게 왕래하는 손님입니다. y의 허락을 구해 실화를 바탕으로 씁니다.
y는 전화로 점을 본댔다. y는 수도권에 살아서 부산까지 올 수 없었다. 법당서 점을 보는 거나, 전화로 보는 거나 별반 다를 바 없어 괜찮았다. 나는 y가 아픈 사람 같았다. 사진을 받기 전부터 말라비틀어져 골방에서 술 먹고 담배 피는 애가 상상됐다. 아니었다. y는 아파 보이지도, 빈약하지도, 유흥에 취해 피골이 상접하지도 않았다. 학생 같았다. y는 예술대 학생이었다. 이런저런 사유로 웬만큼 나이를 먹었어도 아직 학생인 학생.
y는 밝았다. 목소리도 밝고, 웃는 소리도 밝고, 내 말이 맞다고 손뼉 치는 소리도 밝았다. y는 y가 얼마나 밝고,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걔 팔자가 그랬다. 여러 사람 앉혀 놓고 누구 팔자가 제일 안 좋냐 내게 묻는다면 단연 걔를 꼽을 정도는 됐다. 여느 점집 가면 걔 보고 무당 해라, 신 받아라 그랬을 것 같고, 점집 여기저기 다니면서 별소리를 다 듣고 살았을 것 같았다. 자기 입으로도 그랬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고. 그러나 그건 틀린 점이다. y는 팔자 이상해도 신 받을 애는 아니다. 걔는 친가에 거나한 갑부로 살았던 할아버지, 예술품 모으고, 학식 높은 할아버지가 지켜준답시고 따라다니는데 멋모르는 무당들이 대충 신 있는 것 같으니까 방울 들라고 한 거다. 어디 살아생전 양반가 할아버지가 방울 흔들겠냔 말이다.
친가만 보면 y는 잘 풀리는 게 맞다. 타고난 사주도 돈 있고, 살아생전 재산 있고 학식 높은 할아버지가 지켜준다고 따라다니는 데 걔는 잘 풀리지 않으면 이상한 애다. 근데 걔가 왜 안 풀리냐. 재수 없게도 귀신이 많았다. 집에 뭐 하다 죽은 귀신, 뭐 하다 죽은 귀신, 그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온몸이 다 아팠다. 이런 팔자는 집에 묵은 귀신 다 쳐내고, 수호하는 할아버지만 대감으로 나무 함 안에 모셔놓고 살면 된다. 점 보는 신을 앉힌 게 아니니 무당 된 것도 아니고, 점 볼 것도 아니고, 그냥 대감 할아버지만 모셔놓고 하던 거 하면 되는 팔자다. 뭇 보살이 얘 보고 신 받으라 했던 것도 이 집 귀신한테 홀린 게 분명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당신 집에 일찍 죽은 여자 누구냐고. 아니나 다를까 외가에 굿하다 살 맞고 죽은 여자가 있단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이런 애들을 잘 안다. 제대로 된 수호신이 앞길을 닦아주니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사람 볼 줄도 아는데 빌어주지 않은 한 있는 귀신들 때문에 앞길 꼬이는 애들 말이다. 이런 애들은 미치기 딱 좋다. 도덕, 윤리, 덕목, 그런 거 알기 때문이다. 조상 중 귀신 된 이 있고, 그거 뒤집어써서 밖에 나가 술이나 먹고,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헛짓거리 빽빽하다가도, 이게 아니라는 거 은연중에 알기 때문에 미친다.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니까 말이다. 내가 도덕, 윤리, 인간으로서의 덕목, 마음속에 없는 게 아닌데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때부터 사람 미치는 거다. 그렇다고 걔 눈에 신이 보이겠나, 귀신이 보이겠나. 그냥 나 정신병 걸렸는가 보다, 아주 미쳤는가 보다, 그러면서 병원 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