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가 생애 첫 명품 가방을 사줬다. 나는 명품은 제품이 아니라 사치품이고, 사치가 개인의 재정 상태를 흔들 수 없는 선에서만 허용되는 게 맞다고 보기 때문에 늘 조심스러운 입장인데, 선물로 받으니 딱히 할 말도 없고 그저 고마운 마음만 들었다. 제대로 값을 해내지 못하는 물건은 거둘 필요가 없다고 빳빳하게 주장해왔지만, 이번 건 에라 모르겠다다. 고맙고 감사하다. 제대로 값을 해내기까지 해서 더 고맙다.
잠깐 A의 얘기를 해본다. 가방 구매와 관련있다. A는 다수의 인물이다. A는 자존심 상하는 걸 몹시 두려워하지만, 자존심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마땅히 다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남들 앞에서 우아를 떨거나 배운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갖는다던가, 돈에 지지 않는다든가, 상대의 출세에 배 아파 하지 않는 두둑한 배짱을 갖는 데 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지극히, 아주 지극히 모르고 산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겉을 포장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지, 그 맷집을 키우는 데 있다는 걸 말이다. 이런 맷집이 사람을 나아가게하고, 큰 액션 없이도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게 한다.
나는 잘 참는 이들이 좋다. 긁히고, 배 아프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기어코 이겨내고 말겠다고, 참아 내어서, 반드시 긁히거나 배 아프지 않을 만큼 커지겠다는 사람들 말이다. 누군가를 보고 배가 아플 때, 상대의 흠집을 찾아 기어코 배 아플 필요 없는 이유를 만드는 사람들 말고, 내가 더 잘났소 할 수 있는 이유를 연구하는 사람들 말고, 시기와 질투를 받아들이고 나 역시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시기심, 패배한 듯한 마음, 뭐 비슷한 거 들 때마다 A들은 이렇게 군다. 다는 아니지만 이런 레파토리다. 나는 많이 배웠고, 인류애 있고, 착하고, 나쁜 사람 아니라고, 내가 더 나은 거 아닐까 대충 생각하며 본인 눈 가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 한계를 체험하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 속에서 머리 쥐어 싸매며 혼자 울게 돼 있다. 울지 않는 법은 딱 하나뿐이다. 나 졌다고, 모자라다고, 그러나 더 나아질 거라고 반드시 인정하는 거 말이다.
오늘 가방 받으면서 이런 생각했다. 내 눈 내가 가리지 않고, 잘못한 건 인정하고, 그렇다면 상대에게, 혹은 사회에게 잘못하지 않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게 내 친구고, 스승인데, 그런 사람에게 부자 되라고 받은 가방이라면 .. 나 제법 인정할만한 사람 된 거 아니냐는 생각. 나는 지금껏 나열해 온 A같은 사람들, 되지 말아야 할 인간 유형들, 그런 유형에 단 조금도 교집이 없는 사람이 나라는 거 자부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허구한 날 남 탓하고 사회 탓하고, 이상하리만치 억울해하는 사람들 후드려 잡듯 살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이렇듯 당신들이 나와 내 주변의 흠을 단 한 치도 잡지 못하게, 시기하지 않을 이유를 조금도 발견할 수 없게, 내가 언제든 당신들을 향해 조준할 수 있게 대비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나와 함께 가자고, 결코 나는 나와 주변의 행복만 바라는 게 아니라고 진실 되게 말도 해줄 것이다. 당신은 내가 짠 판 안에 있다. 이 판은 당신의 행복을 몹시 바라는 판이다.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