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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만나 본 천재들

by 이윤우

무척 중요한 기도를 잡아 둬서 그런지 몰라도 지난 밤은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잤다. 살면서 만나 온 천재들이 생각났다. 유독 수학에 재능이 있어서 11살 때 수학의 정석을 미리 뗀 친구, 문장 짓는데 탁월해서 고등학교 때 출판사 연락을 받았던 친구, 미국으로 유학을 가 아이비리그 학위를 따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찍이 사업을 했던 친구, 당시 천재 아니냐고 얘기 나왔던 그 애들 생각이 문득 났다. 나는 그 애들과 친구였을 때, 정말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 애들 중 타고 나기를 우수한 천재는 몇 안 되고, 그거 다 운 좋게 만들어 진 거라는 생각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11살 때 정석을 뗀 친구와 나는 12살이었나, 13살이었나 한 집에서 수학 과외를 받았었는데 그 애는 그 애 학교에서, 나는 우리 학교에서 공부로 날고 기었던 애들이었고, 아무리 우리가 각자 학교에서 공부로 날고 긴다고 해도, 11살 때 정석을 독파할 정도로 수학 천재인 애를 내가 수학으로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엄마는 욕심이 많고, 원체 좋은 대학을 갔던 언니보다 나를 좀 더 먼 곳으로 보내고 싶었는지 자꾸만 나보다 월등히 우수한 애들과 과외 일정을 잡곤 했다. 그 애 수준에 맞춰 나 역시 초등학생 때, 고등학교 수학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정말 조금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엄마가 엄마 이미지를 생각해 그런 애들과 나를 한 데 묶어 공부시켰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엄마 이미지를 생각하느라 내 인생이 조금 꼬였던 거라고 아직도 생각한다. 나는 내가 그 수학 천재보다 멀리 갈 수 있는 천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엄마가 그 시간을 좀 유예 시켰다고 믿는다. 엄마 탓하는 거 맞다. 그러나 억울하진 않다. 나는 내가 잘될 거라는 사실, 이미 잘 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출판사 연락을 받았던 친구나, 아이비리그 학위를 따온 친구들은 그때나 주변에서 천재 소리 들었지 실은 아닌 유형에 가깝다. 전자는 부모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무척 억울해하고, 그것으로 하여금 우울증을 호소하고, 그것을 글로 이었는데, 나는 부모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아서 네가 출판사 연락을 받을 만큼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걸 인지했고, 걔 말은 자세히 들어보면, 부모님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는 사실, 오히려 부모에 대한 가짜 원망을 먹이 삼아 글을 썼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래서 원망하는 자세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걸, 그게 너의 본심이라는 걸, 부모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고 믿고, 슬퍼해야만 네가 좀 더 관심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비리그 학위 따온 친구는 말할 것도 없다. 돈 있는 집 자식은 프레임에 맞게 행동해야 된다는 일종의 강박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데서 태어난 사람은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 그런 강박은 공부에 재능이 있건 없건 사람을 멀리 데려다 놓을 때도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는 효과 비슷한 거. 내가 돈 있는 명문가의 천재자제라고 철썩 같이 믿어서 그렇게 되는 거 말이다. 사실 본성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개나 주고, 못 돼 빠진 게, 보고 큰 게 있어 고상한 척 교양 떨 수 있는 맥락 말이다.


사람은 어느 순간 잘 살고, 뛰어나고, 주목을 받을 수는 있어도 그건 단지 높은 파도에 올라탄 거라는 말이 생각났다. 영영 잘난 사람도 없고, 영영 못난 사람도 없는 게 인생이라고, 어쩌면 저마다 잘하는 거 발굴만 해내면 누구나 천재 소리 듣고 살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거 말이다. 아마 저 애들이 내 친구라서 알게 된 걸지도 모른다. 더 정확히는 내 일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 사람, 이렇게 좋은 재능 내버려 두고 왜 이러고 있지, 그런 생각 들게 하는 팔자들 보면서 말이다. 대단히 지능 높은 사람, 뭐 잘하는 사람, 머리 좋은 사람, 그런 거 식상하고 재미없잖은가. 사실 사람은 다 저마다 잘하는 거, 모자란 거, 제대로 마주 보고 배짱 좋게 굴어보면 누구나 한 번씩 천재 소리 듣고 살 수 있는 것 같다. 누구 하나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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