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에서 마련해 주신 감사한 자리에 다녀왔다. 프라다의 옷 값이 너무 사악해져서 정이 뚝뚝 떨어지던 찰나에 평소 관심도 없던 구찌의 발레리나 슈즈가 출시됐고, 얼마나 잘 빠졌던지 그걸 미미에게 선물할 수 있어서 몹시 기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응대해 주신 셀러님의 친절이 너무 완벽했는데 그걸 계기로 인연을 맺어 좋은 자리에도 초대받았다.
웬만한 명품의 제조 공정에 예전만 한 장인 정신이 깃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돈 모으길 포기하고 명품이나 하이주얼리를 사는 데 눈을 번뜩이며, 그런 시대상에 맞춰 명품 브랜드들은 더 영악한 수법으로 사람들에게 값비싼 물건을 팔아치운다는 사실, 모두가 이 사실을 암묵적으로 눈치챈 듯 하지만 결국 또 당하고 마는 알고리즘을 배울 수 있는 자리였다. 그 알고리즘이 정말 예리하고 근사하게 웬만한 자본 시장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브랜드의 가치가 대단하면, 사람들은 해당 브랜드의 상품이 예전만 한 품질, 예전만 한 공정을 지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직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만을 공유하기 위해 돈을 쓴다는 사실, 명품이 예전만 한 장인 정신을 지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비하는 이들이 멍청한 게 아니라, 사실 명품 브랜드를 고안하고 이어온 이들의 수준이 대단히 높을 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자본 시장이 그럴 것이다. 소비자가 멍청한 게 아니라 소비를 촉진하는 생산자와 생산 관계자들이 소비자의 심리를, 자본 흐름을, 무엇이 돈이 되고 무엇이 돈이 되지 않는지를 너무 잘 알 뿐이다.
유서 깊은 기업이나 브랜드가 쉽게 망하지 않는 것, 아무리 물건 가격을 올리고, 가격에 견줄만한 품질이 아닐 때가 있고, 가족들의 인성 문제가 발발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도, 그들은 이미 그들에게 돈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 값비싼 물건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혹은 환경을 조성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고도 피해 가는 듯한 뉘앙스는 충분히 걸고넘어질 수 있지만, 자본 시장의 생리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용한다는 점은 딱히 나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남 보다 돈 버는 감각이 좋은 건 감출 수 없는 지점이고, 누구든 갖고 있을 때 썩히지 않을 게 뻔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재밌는 건 이렇듯 사회적 시스템을 장악한 듯한, 혹은 관통하고 있는 듯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듯한 영리한 집단에도 마치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이를테면 부모의 재산이 마치 나의 재산이고, 부모의 돈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바보들이 있다는 점인데 세상만사라는 게 참 공평하다는 걸 여과 없이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자본을 누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장악한 사람들은 사실 자본을 누리기 위해 포기했어야 됐던 것들, 돈을 쥐고 있을 때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고, 그들 중 몇은 차라리 돈을 안 쥐는 게 더 나았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돈의 무서움을 알 텐데 말이다. 이어서, 나는 이들이 오직 돈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헐뜯는 사람들도 비슷한 바보라는 걸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