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집중하며 보낸 지 한 달이 지났다. 생식만 하는 기도 ( 이를테면 쌀과 간장만 먹는다든지 )는 아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 비린 것 정도만 먹지 않았고, 가끔 커피 한 잔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만 종종 있었다. 왕왕 엄격한 기도는 밖을 나돌지도 못하고, 쌀이나 간장, 상추 따위나 먹어야 하고, 사람을 보지도 못한다. 제법 수월하지만 기도는 기도기 때문에 마가 많이 들어온다. 기도란 무속인을 더욱 영검하게 만드는 공부인데, 신께서는 이 공부를 해낼 자격이 있는지, 계속해도 되는지, 시험할 요량으로 갖은 마들을 밀어 넣곤 한다. 자고 싶은 마음, 놀고 싶은 마음, 연애하고 싶은 마음,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마음들을 일부러 들게 하고는 과연 그 마음에 속는지, 속지 않는지 간을 보신다.
나나 설하 언니야 신을 모시고 남들 다 하는 연애 한번 해본 적도 없고, 자식 낳은 제자는 가는 길이 제한될 수 있으니 결혼이나 자식은 꿈도 안 꾸는데, 이 마음먹은 지가 오래돼서 연애하고 싶다든가, 사랑하고 싶다든가 하는 마들은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마들이 우후죽순 불어왔겠지만 감각조차 안 되는 걸 보면 이 마음은 우리를 아주 떠난 모양이다.
무속인만큼은 아니지만 사바세계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도 저마다 기도의 시간, 마를 이겨내야 할 시간이 있다고 믿는데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꼭 중요한 시험을 앞두기 전에 이성이 들어와 공부에 훼방을 놓는다든지, 돈에 대한 간절함이 커질 대로 커졌을 때 함께하면 돈 될 것 같은, 실상은 사기꾼이 곁에 붙는다든지, 피땀 흘려 노동하면 될 일을 게으름 이기지 못해 한탕을 바란다든지, 사랑에 대한 유혹을 이기고, 돈에 대한 유혹을 이기고, 게으름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야만 만날 수 있는 진짜 인생이 있고, 제각각 불어오는 마를 유리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무속인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이 사람을 만나면 일이 안 될 거라든가, 그 사람 사기꾼이니 조심하라든가, 당신이 일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땀 흘려야 한다든가 하는 말들을 해줄 수 있어서다. 그 말을 들을지 말지는 듣는 이의 몫이지만, 꼭 들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은 마음 한편에 늘 있다. 나는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기도라 해서 온갖 유혹과 마만 우후죽순 들어오는 건 아니다. 며칠 전 밤에 신도님 전화 와서 그런 말씀하시더라. 자기는 평생 벼랑만 피해 다닌 것 같다고,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틈새 쏙쏙 찾아다니면서 몸을 숨겼는데 그러면서도 잘 풀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모순이라고. 이제 그렇게 안 살고 싶은데 자기가 할 수 있냐고 물으셨다. 벼랑 피해서 다니는 거, 그러면서도 욕심은 못 버리는 거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제 그렇게 안 살고 싶다고, 내가 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얼마나 많은 회의와 반성이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만 안다. 사람은 본인 못난 거 인정하고, 이제 그렇게 안 살고 싶다고, 내가 할 수 있겠냐고 아무나 못 묻는다. 기도 중에 받은 선물 같았다. 마가 있으면 선물도 있다고, 이렇듯 공평한 게 신이라고 다시 봤다.
올해는 언니와 기도 열심히 하며 한 해 잘 보낼 것이다. 이 공은 내게도 오지만 우리 가족에게, 우리 집 다니는 신도님에게, 동네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고스란히 갈 것이다. 내일이, 다음 주가, 다음 계절이 기대되는 삶을 산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축복인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