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선왕이 활시위에 매달려 죽을 때를 상상해 본다. 목을 죄는 힘이 강해질 때마다 보이는 얼굴들, 그의 할아비나, 그의 아비나, 그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준 사람들이 강을 건너오는 모습이 또렷해지는 것만 같다. 사람은 저승에 다다르면 누구나 강을 만난다. 강은 아득한 숲을 양옆에 끼고 있거나, 큰 물의 바다거나, 꽃 이파리 가득한 들판을 두고 있을 때도 있다.
사람의 심연이 어떻냐에 따라 강 모습이 달라지는 거라면 단종의 강은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마른 땅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나고 자라기를 충만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뒤집힌 인생을 만나면 그렇게 된다. 따스한 볕도, 고고한 달도, 계절 따라 달라지는 나무도 다 전생에 지나친 꿈같다. 실은 처음부터 죽은 땅 위에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지금이 꿈인지, 지나친 게 꿈인지 헤아릴 수 없다. 헤아릴 수 없는 날이 길어지면 사람 마음에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생긴다. 나는 그걸 공(空)이라고 한다. 아주 큰 공. 무엇으로도 이름 지을 수 없고, 무엇으로도 바꿔 말할 말 없는 허무가 곧 그 사람이 된다.
그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떤 삶을 살았을지 명징하게 알 수 없다.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두메산골 백성과 어울려 울고 웃었을 수도 있고, 몰락한 왕권을 슬퍼하며 시름시름 앓아 죽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작 열여섯 어린 몸은 죽어서야 사랑하는 이들과 만났다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조리 죽어가는 것을 다 본 후에야 단종은 죽을 수 있었다.
단종이 죽고서야 본 세상에 대해 상상해 본다. 나를 위해 피 흘린 사람들, 그의 가족들, 죽어서야 고통 받지 않게 된 몸들, 숨 쉬지 않는 시신을 부둥켜안는 이들, 딱딱해진 열여섯 몸 앞에서 향을 피우는 이들, 울어주는 이들, 그리워하는 이들…. 스스로 사랑받지 않았음을 도무지 모르게 두지 않는 이들 곁에서 내내 어린 청춘으로 살아가는 세상이길 바라본다. 살아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 위에 홀로 섰어도 죽어서는 그 땅이 내내 밝고 푸르기만을, 그를 기리는 이들 모두에게 꽃 같은 청춘을 선물하는 신이 되었기를 말이다.
어린 왕이 죽어서 본 세상에서는 한 때 함께 삶을 향유했던 것들과 웃고 있기만을 바란다. 사계절을 살고, 끼니를 채우며, 말하지 못했던 것을 있는 힘껏 나누는 저승이 꼭 이승처럼 그의 앞에 있길 바란다. 아주 오래 오래, 영영 그렇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