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쓰지 않는 형식의 글, 가령 점을 볼 때도 그 사람 심장을 상 위에 두고 명징하게 묘사하는 글은 나만 쓰는 글이라고, 그건 아무도 훔칠 수 없다고, 때문에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누군가 점을 보거나 글을 쓰기로 한다면, 그 사람 방식으로부터 내가 생각날 리는 없다고 믿는다. 나는 이 지점을 취하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연구해 왔다. 세상 어딘가에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설렘, 우린 그걸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설핏 감각했지만, 내 인생을 문서화 시킨 글, 것도 내게 꼭 맞는 단어로만 직조된 글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누구도 쉽게 가져다 주지 못했던 울림을 마주할 수 있다.
시시콜콜하게 옛날에 어떻게 살았냐느니, 다섯에 죽을 고비를 넘겼겠다느니, 그런 말들은 유치하다. 누차 말하지만 사람 인생이란 게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사느냐, 어떻게 살기로 마음 먹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당장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바라보는지 건져 올려 그 마음의 어디가 어떻다고,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리라는 식의 말을 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운이 들었다고 말해준들 그 사람이 그 운을 취하는 방법이냐 알겠냐는 거다. 당신 앞에 있는 운을 당신 스스로 쟁취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준비된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점 보는 데 돈은 적당히만 쓰시고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돈도 잃어가며 배우라는 얘기를, 점은 나중의 나중에, 당신 감각으로 그 무엇도 관통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 보시라는 얘기를 자주해 왔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뭣보다 주변 사람이 중요하다. 누구와 살고 있는지, 누구와 친구나 연인이 되었는지,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런 것들 말이다. 나는 매일 같이 가족과 친구에게 신세를 지고, 매일 미안하다는 말,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내 인생이 웬만큼 굴러가는 데 그 사람들이 있어서 소름 끼치게 다행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비슷하게 실수하고, 비슷하게 화내고, 비슷하게 투정 부리면서 속으로는 미안해 죽겠지만 제발 받아달라는 앙큼한 욕심을 내내 끼고 있었다. 나도 다음에 너희에게 꼭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잘 받아주고, 그릇 넓게 굴고, 그릇 넓게 군다는 감각조차도 하지 않는 베품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다.
여러분 모두 그리 사시라. 내가 여러분 점을 볼 때 여러분 심장을 상 위에 펼쳐놓듯 여러분 스스로 그 작업을 하시라. 당신 심장에 뭐가 들었는지, 뭐가 당신을 유치하게, 억울하게, 못나게 하는지, 그걸 잘 보고 안 하기로 마음도 먹고, 단 한 순간만이라도 흐린 눈으로 당신을 보지 않고,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했는지, 주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얻었는지를 잘 보면서 당신 스스로 보살이 되시라. 나는 내 마음을 꺼내 볼 때 아주 괴로웠다. 이 수준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게 괴롭고, 이렇게나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아주 많이 괴로웠다. 그걸 다 해보고 나니까 인생이 다 허무고 공이라는 게, 이런 말조차도 사치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설핏 알 것도 같다. 실은 모른다. 내가 아는 게 뭐가 있겠냐 만은 같은 생각이 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