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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그러나 방안에 멍하니 누워있던 때랑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by yun


거리가 가까운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가장 고려했던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전화를 받고 프로젝트 추가 참여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들리는 두 개의 회사 이름을 놓고 나는 여러모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는 일, 집과의 거리. 필요조건. 아무튼 그렇게 머리를 쓰고 나서 고른 회사였다. 드물게 우리 집에서 버스 하나로 갈 수 있다는 부분에(이제는 환승해야 하지만) 분명 혹했을 거다.


첫 출근에 대한 설렘이라기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대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보지 않았던 터라 사회생활은 정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나서 안 그래도 경력직만 뽑던 알바는 이제 자리조차 더 구하기 어려워진 상태였으며 무경력으로 회사를 지원할 배짱은 없었고 그로 인해 한참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 가까웠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대화 내내 시선 마주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사회성이 탁월한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버스를 타고 정류장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조금씩 긴장을 했다. 길을 걷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로고에 아 여기구나 싶었다. 물론 평범한 주택이라 솔직히 말해서 잘 온 게 맞나 하고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심호흡을 할 생각도 못하고 긴장이 서린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겉과 다를 것 없이 정돈된 가정집의 모습에 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이내 맞아주시는 기획팀장님의 모습에 한시름을 놓았던 것 같다. 제시간에 잘 찾아온 게 맞구나, 하고.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방 두 개 안에 컴퓨터가 여러 대 보였다.


안내해주신 거실 회의 테이블 앞에 앉아 질문에 떠듬떠듬 대답하는데 그 순간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머릿속에 담아두던 것을 말로 내뱉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랴.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자가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일이 적었을 뿐이다. 이러다 금방 잘리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랑 다르면 어쩌지, 하고 괜한 걱정부터 했지만 차마 울 수 있는 자리는 아녔기에 울컥하던 심정은 참았던 것 같다.


웹디자인 기능사 실기를 준비하다 세 번 떨어지고 그에 따라 자존감은 점점 사라져 가고 이 길이 맞나 싶은 것을 고민하던 때에 찾아온 기회였다. 평소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던 타입도 아녔고, 나름의 비전이 있는 것도 아녔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지내다 보니 당연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버벅거릴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서 지금 당장 비전이 생각나거나 하는 건 여전히 아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즐거워하는지 잘 모르겠는 상태 그대로이다. 주변에서 칭찬을 해줘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자연스레 혼자 땅굴 파는 것에 더 익숙해져 버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완벽하게 성공하는 법을 찾기에는 또 멀었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노력은 하고 있으나 이것이 맞는 것인지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게만 다가온다.


그러나 방안에 멍하니 누워있던 때랑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내 손으로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나는 조금 더 기운을 차리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전만큼 우울하지가 않다. 골방에 틀어박혀 작은 창문을 바라보고 휴대폰을 바라보고 노트북을 두드리던 일상에서, 공간에서 빠져나와 나는 조금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이 그저 기쁘다. 긴가민가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그나마 할 수 있는 걸 찾았다는 것도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글로 무언가를 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취미생활의 하나로 특정하고 그림과 함께 가끔 끄적이던 수준에 불과했기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을 써 내려가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끄적인 것들은 항상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내 취향대로 쓴 것들이라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따금씩 전에 써 놓은 것들을 읽을 때 왠지 또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에 즐거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에 찾아온 그 기회란 것은 나의 많은 것을 바꾸게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것들을 남들에게 공유하고 공감을 얻으며 나 자신도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만 같아서 앞으로의 일들이, 내가 써 내려갈 것들이 조금이나마 기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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