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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수요자 Nov 11. 2018

내 품격 자가체크

"말의 품격" / 이기주

속 시원하게 나를 짚어본 책


고향 집에 내려가면 괜히 기대하고 들여다보는 곳이 있다. 바로 거실 구석에 차곡차곡 책이 쌓인 책장이다. 엄마가 틈날 때마다 사고 싶은 책을 사서 모아둔 곳인데 아직 펼치지도 않은 새 책이 많다. '니 갖고 가고 싶으면 갖고 가라'는 말에 가방이 무거워져도 몇 권 챙겨 서울로 올라오곤 했다. 올여름에 들고 온 책은 무겁고 재미없어 보이는 책 사이에서 유일하게 무게도, 내용도 가벼워 보이는 책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던 당시에 리프래시 할 게 필요했는데 딱 알맞은 책이었다.


나 스스로에 대해 묻고 또 묻는 시기에 이 책은 '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해 준다. 저자는 이미 '언어의 온도'로 유명한 작가란 건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 시대의 뻔한 베스트셀러 이진 않을까 하고 큰 기대를 안 했는데 괜히 베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부드럽고 정확하게 독자를 반성케 만들었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찍은 말의 품격



말의 귀소 본능


9 page /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부다페스트 뒷골목에서 수다 떠는 사람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이야기다. 사람마다 유독 말 때문에 고민하는 시기가 있을 거 같다. 내가 올여름에 그랬던 거 같은데 친구나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누군가가 상처 받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게 나이든 상대방이든 꼭 한 명은 기분이 상해서 심하면 관계를 재정리한다. 말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책은 많은데 어떻게 하면 말을 조심하는지에 대한 책은 적다. 그런데 이 책에서 화려한 화법보다 말을 내뱉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읽는 내내 와 닿았다.


10 page / 아무리 현란한 어휘와 화술로 말의 외피를 둘러봤자 소용없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은 분명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손자병법에서의 사례도 많이 언급된다. 손자병법은 싸우는 기술뿐 아니라 소통하는 기술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작가는 손무의 말을 인용하며 어떻게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말을 쓰는 자신이 어떤 품격을 갖게 되는지에 대한 걸 면면히 짚어준다. 거기에서 나 자신이 어떤 품격을 가졌는지 계속 돌이켜보게 되었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는 말


프라하에서 대화 나누는 남녀


나는 말이 많은 편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많이 할 때도 있고,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게 싫어 안 해도 될 말을 할 때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도 먼저 말을 걸거나 괜히 목소리 톤을 높여 친근하게 다가가려 한다. 그렇지만 내 의도와 달리 잘 안 풀리는 대화도 있어 그럴 때가 생각나며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는 얘기가 참 공감됐다.


한 번 쏟아낸 말은 주워 담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카카오톡에서는 '삭제'기능도 있는데 어제도 단체방에서 괜히 웃긴 얘기 하겠다고 내 이미지 깎는 얘기를 하다가 뒤늦게 삭제 버튼을 마구 눌렀다. 같이 얘기하던 언니도 동참하며 대화 나눴던 기록을 열심히 지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니 더 이상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이 보고 궁금증 유발한다고 다시 얘기해달라고 했는데 처음부터 괜한 말을 꺼냈다 싶었다.


그러하다. 텍스트로 남은 건 어떻게든 지워볼 수 있지만 말은 공기 중에 흘러가던 걸 조준해서 없애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을 하되 딱 필요한 말만 하고, 너무 가볍게 흘리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176 page /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수양서인 <사소절>에서 성인이 알아둬야 할 행실과 언어생활에 대해 소상하게 적었다.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마음을 짓눌러야 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거친 말을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르게 될 텐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의 품격이란


비엔나 쇤부른 궁전에서 담소를 나누며 걷는 친구


자기반성을 하는 건지 뭔지 몰라도 말이 품격을 드러낸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내가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아갈 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봤다. 유튜브에서도 '말 잘하는 방법', '발표 노하우' 류의 영상을 틀어보긴 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킬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라는 점.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말의 품격'을 읽으면서 더 꼼꼼하게 내 말 습관을 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언어의 온도'도 읽어 내 온도도 정돈해보고 싶다.



메인 사진 : 프라하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녀, 체코 프라하, 2017


*캡처나 출처를 밝힌 경우를 제외한 모든 사진은 본인이 직접 찍었고, 저작권은 본인(@yuoossoo)에게 귀속되어 있습니다. 불펌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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